[프로기사들 명사와 대국때 어떻게 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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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번 '칫수' 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독자들로부터 프로와 아마추어의 칫수를 놓고 재미있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프로에겐 3점으로 승률이 반반인데 아마강자에겐 4점으로도 진다며 자신은 그 이유를 "프로는 정수로 두는데 아마는 암수를 쓰기 때문" 이라고 해석까지 덧붙였다.

칫수에 대해선 참으로 아전인수가 많은데 '암수론' 도 그중 하나다. 바둑에는 정수와 암수가 따로 없고 사람에 따라 기품 (棋品) 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꼼수나 암수를 못이기는 정수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꼼수로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력이 약해 졌을 뿐이다. 이것은 명백한 진실인데 바둑팬중 이걸 인정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않다.

같은 1급끼리 5점까지 놓게 되는 이유 역시 칫수내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프로들은 바둑보급을 위해 팬들과 대국할 때 굳이 이기려들지 않는다. 특히 사회명사들의 착각은 대개 이 때문에 발생한다.

법조계의 고위직을 지낸 S씨는 거의 모든 프로들과 선 (先) 으로 두었다. 그러고도 대개 이기니까 나중에는 상대의 프로전적에 따라 자신이 칫수를 결정했다.

실제로는 4, 5점 바둑인 그는 어느날 서봉수9단과 선으로 두다가 바둑판위의 돌이 거의 몰사하는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사교성이 부족해서 져주고 싶어도 잘 안되는 서9단을 만난게 불행이었다.

담백한 성품의 김인9단은 사교바둑을 거의 두지않고 살았다. 이창호9단도 사교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거절을 못하는 성품의 이창호9단은 중학생때부터 사교바둑을 가끔 두었다.

바쁜 와중에도 바둑계의 외교를 해달라는 한국기원이나 선배들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여기저기 행사에 끌려다녔다. 그때마다 정치인이나 명사들과 대국을 하게 되는데 물론 어린 이창호에게 선배들은 미리 "져주라" 고 부탁한다.

신기한 것은 이9단이다. 그는 거의 한집을 진다. 상대가 선으로 둔다든지 해서 꼭 이겨야할 경우도 한집만 이긴다. 이것이 만들어진 승부라는 것을 그는 그런 식으로 은근히 보여주는 것일까. 프로들은 상대가 천방치축의 실수를 계속 하기 때문에 일부러 져주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딱 한집에 맞추는 이창호9단을 보고 재삼 감탄하곤 한다.

접바둑엔 김철중2단이 최강이라는 소문은 사실일까. 바둑계에선 김철중2단과 김희중9단을 접바둑의 귀재라 부른다. 김철중2단의 경우 아마추어 시절부터 아마5단을 6점까지 접은 인물이다.

그러나 조훈현9단과 서봉수9단도 접바둑에서 이들보다 세면 셌지 약하지는 않다. 접는 기술 역시 바둑실력과 비례할 뿐이다.

칫수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이 있겠지만 바둑은 결국 서로 실력에 합당한 칫수로 대국해야 승부에 긴장감이 있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승리를 자주 헌납받는 '높은 사람' 일수록 자신의 진정한 실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서봉수9단은 바둑TV라는 공개무대에서조차 한번도 봐준 일이 없다.

대통령후보에서 현직 국회의원까지 유명한 인물들을 서9단은 무참히 이겼다. 작정을 하고 이긴건 아니고 봐주고 싶었는데도 잘 안되는게 서9단이다.

바둑TV는 이런 서9단을 앞세워 새로운 접바둑프로를 구상하고 있다. 즉 서봉수9단에게 3점을 놓고 이기면 아마6단을 즉석에서 증정한다는 것. 심사를 통과해도 1백60만원의 인허료를 내야 하는 아마6단을 공개석상에서 당당히 따낸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지원자를 엄선하기 위해 상당한 신청료를 받는데도 한국기원의 조사결과로는 벌써 지원자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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