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서해침범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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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1일 베이징 (北京) 남북 차관급회담을 앞두고 경비정을 동원해 NLL을 침범한 북한 군부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우리측 북한 전문가들은 군 지휘부가 자신들의 존재를 안팎으로 드러내보이려 이번 사태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의 평양 방문에 이어 남북 당국 대화의 물꼬까지 터지자 설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금강산 관광에 대해 군부는 "장전항은 군항 (軍港) 인데다 금강산 일대는 군사 요새" 라며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주영 (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할 때도 군부는 판문점의 문을 열어야 했다.

당시 군부가 "판문점만은 안된다" 며 반대하자 김용순 (金容淳.노동당비서) 은 김정일을 찾아가 직접 허락을 얻어내 군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 우리측 정보판단이다.

여기에 대남.외교 종사자들이 한국산 비료 20만t과 미국식량 60만t을 얻어내는 전과를 올렸지만 군부는 뚜렷이 내세울 게 없는 상황이다.

NLL 문제가 북한 군부가 챙길 수 있는 아이템이란 점도 생각할 수 있다.

한.일 어업협정 등에서 볼 수 있듯 영해분쟁은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 사안이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鄭永泰) 정치군사연구실장은 "군부의 입지도 과시하고 정치적으로는 우리 정부를 딜레마에 빠뜨리려는 선택" 라고 풀이했다.

군부의 이같은 도발은 김정일로서도 굳이 말릴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군부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척 하면서 권력 내부의 강온세력을 통제, 대남 접근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군부의 속셈은 15일 장성급 회담에서 북한측 수석대표인 이찬복 중장의 입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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