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유식 '이민길'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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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간도로 떠난 우리 증조부는

흙이 되어

시베리아 모진 바람에

흙모래로 불어와

봄마다 조국강산에

할미꽃으로 피어나고

하와이로 떠난 우리 조부는

사탕수수밭에서 사탕뿌리만

캐다가 물이 되어

태평양의 파도로

동해에 철썩이고

캐나다로 떠난 우리들은

샌드위치를 싸고

식품점에서 동전을 두들기고

하루가 이틀이다

- 이유식 (58.在캐나다) '이민길' 중

한반도 근대사는 이민사를 챙기지 않으면 허황한 것이 된다.

인천에서 화륜선을 타고 몇날 며칠 태평양 너울을 견디며 하와이에 닿자 사탕수수밭 노예 신세가 됐다.

이불과 솥단지 메고 두만강 건너 북간도 황야에 이르니 밤낮으로 뼈가 빠져야 했다.

망국의 시절, 실향의 시절이었다.

그런 피내림으로 오늘의 이민생활도 고단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는가.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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