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선거혁명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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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인도네시아에 선거혁명이 일어날 조짐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90%를 웃도는 투표율에다 메가와티 여사가 이끄는 민주투쟁당쪽으로 표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번 선거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변화를 위한 선택' 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초반 개표 결과 민주투쟁당은 자카르타 등 주요 도시는 물론 취약지로 꼽히던 농촌에서도 큰 표차로 집권 골카르당을 앞서가고 있다.

민주투쟁당의 우세가 막판까지 이어질 경우 단독으로든, 야당연합으로든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로 표를 통한 정권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메가와티의 보좌관인 수바기오 아남 박사는 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메가와티와 아미엔 라이스가 주도하는 국민수권당이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고 전했다.

이슬람 계열인 국민수권당은 물론 5~8% 정도의 득표율을 보인 국민계몽당도 연립정권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여 민주세력과 이슬람계 정당의 대동단결을 통한 정권교체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고 있다.

하비비 대통령의 집권여당인 골카르당은 안정희구 세력의 조직표를 기대했지만 야당 바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권자들이 32년간에 걸친 수하르토 압정 (壓政) 과 그 일가의 부정부패, 여기에 수하르토를 비호하는 후계자 하비비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골카르당 선거본부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희망은 지지기반인 자바지역 표의 향방. 자바지역 의석은 2백32석으로 이번 총선에서 뽑는 전체 의석 (4백62석) 의 절반을 넘는데다 골카르당의 아성이다.

그러나 8일 새벽부터 개표에 들어가는 자바에서도 민주투쟁당이 골카르당과 대등한 싸움을 벌일 경우 선거혁명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게 된다.

자카르타 정치분석가들은 연립야당의 의석수에 따라 향후 인도네시아 정국 구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민주투쟁당이 2백석 가까이를 얻고, 국회를 장악한 야당 연립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경우 11월 국민협의회가 뽑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메가와티 여사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혁명이 정권교체를 완성하는 것이자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둘째, 민주투쟁당이 1백20~1백50석으로 제1당의 위치를 차지하지만 야당이 분열할 경우다.

국민수권당은 민주투쟁당과 제휴한 상태지만 대통령 후보로는 라이스를 강력히 밀고 있다.

이슬람 정당의 밑바닥에는 메가와티가 여성대통령이 된다는 데 반감도 만만치 않다.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민주투쟁당이 승리를 거두지만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위해 현 여권 또는 군부와 제휴하는 경우다.

자카르타 정계에서는 위란토 군사령관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메가와티가 의회를 장악하는 변형된 이원집정제를 점치고 있다.

넷째, 골카르당이 막판 추격전에 나서 민주투쟁당과 선두를 다툴 정도로 1백30석 가량을 획득할 경우다.

이때는 야당연립이 국회를 수중에 넣어도 차기 대통령은 하비비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하비비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38석의 군 (軍) 대표 의원을 지명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다.

여기에다 11월 대선때 국민협의회에 참가하는 지방대표.직능단체대표 2백명은 지역 군총사령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된다.

야당으로서는 그동안의 투쟁이 '찻잔 속의 태풍' 으로 그치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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