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시집가는 한국여성들] 고된 농촌생활 '속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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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농촌총각과 결혼하는 한국 여성이 크게 늘면서 중매업소의 난립, 취업목적 위장결혼, 부부간의 문화적 갈등 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지취재로 실태를 알아봤다.

◇ 공항의 중매인들 = 지난달 23일 오후 12시30분쯤 일본 센다이 (仙臺) 공항 입국대기실. 한국인 중년여성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일본 이름이 교코 (京子) 이며 마흔살이라고 밝힌 그녀는 일본 남자와 맞선을 볼 한국 여성을 기다리는 중이었다.손에 든 메모지에는 '짧은 머리에 하얀색 티셔츠와 핫팬티' 라고 적혀 있었다.

교코는 전문 중매쟁이다.

한국에서 이혼경력이 있으며 결혼상담소의 주선으로 야마가타 (山形) 현의 일본인과 결혼한 지 한달만에 중매쟁이로 나섰다.

그녀는 "일본말을 잘 하는 다른 부인과 함께 일한다" 며 "수입이 괜찮아 이 일을 하는 부인들이 많다" 고 귀띔했다.

이윽고 핫팬티의 30대 초반 여성이 나오자 자기 차에 태워 야마가타로 떠났다.

다음날 같은 시각에도 40대 초반 여인 둘이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서울에 사는 언니가 갑자기 (여자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해와 나왔다" 고 했다.

이처럼 센다이 공항에는 하루에 두세명씩, 연 (年) 1천명 정도의 한국 여성이 일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들어온다.

◇ 무조건 보낸다 = 예전에는 일본.한국 양쪽의 결혼상담소들이 제휴해 국제결혼을 주선했다.

신청자의 간단한 이력서와 전신사진을 서로 보내 조건이 맞는 짝을 선정한 뒤 당사자들의 뜻이 웬만큼 접근하면 신랑.신부 후보중 한 사람이 상대국으로 건너가 만나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요즘 문제가 되는 중매방식은 생활정보지나 일간지 광고를 통해 여성을 모집한 다음 무조건 여자를 일본으로 보낸다.

사진.이력서의 교환이나 본인 동의 같은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다.

모집 광고는 고혹적이다.

'비용 전액 무료, 성혼시 축하금 지급, 자동차도 줌' 같은 문구가 즐비하다.

일단 일본에 건너가면 먼저 중매쟁이가 여권과 귀국용 비행기 티켓을 달라고 해 보관한다.

그리고는 자기 집이나 가까운 호텔에 묵게 하면서 남자들을 소개한다.

YMCA 종로결혼상담소의 정지순 (74) 소장은 "비용이 무료라는 말은 믿을 게 못된다.

항공료를 포함해 최소 1백만원이 든다.

이 돈은 성사가 될 경우 일본 남자가 신부에게 주는 결혼준비금에서 다 제하며, 일이 안되더라도 결국은 토해내도록 만든다" 고 했다.

◇ 신부들은 누구 = 이렇게 만나는 일본 신랑들은 대부분이 40대 총각이다.

한국 여성은 30대 후반이 많으며, 초혼자와 재혼자가 반반 정도. 아이가 있는 사람은 서울에 남겨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처녀 지원자가 느는 추세다.

여기에 일본어까지 가능하면 'A급' 으로 통한다.

이 경우 여성이 받는 결혼 준비금도 80만엔 (약 8백만원) 정도로 높아진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후엔 빚에 쪼들린 여성들의 문의가 늘었다.

얼마전 단란주점을 하다 결혼상담소를 통해 일본 남자와 맺어진 40대 여성이 출국을 얼마 앞두고 채무자들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결혼이 무산된 경우가 있었다.

중국동포 여성이 한국에 시집와 국적을 취득한 뒤 이혼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례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취업이 목적이라는 게 중매업계의 얘기다.

◇ 실패에서 '계약' 까지 = 한국에서 또래의 남자와 결혼했다 성격차이 때문에 헤어진 朴모 (38) 씨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포용력도 클 것 같아 다섯달 전 열한살 위의 일본인 농민과 선뜻 결혼했다.

그러나 도시인인 그녀는 하루 종일 일만 하는 농촌생활에 불만이 많다.

게다가 얘기 들었던 것만큼 생활이 넉넉지 못해 속았다는 느낌까지 든다.

한국인 중매쟁이가 남자의 수입을 실제보다 튀겨 얘기한 것이다.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여성들 중에는 사실상 가정을 버리고 도쿄 (東京) 등 대도시로 돈벌이를 나가는 사람이 많다.

일본인과 결혼해도 우선은 1년짜리 비자만 나와 매년 갱신해야 한다.

5년이 지나면 영주권이 나온다.

이 제도를 이용해 파경 후에도 일본에 남는 여자들이 적지 않다.

40대 초반의 한 여성은 결혼한 지 석달만에 집을 나왔다.

이 여성은 비자갱신 시기가 오면 남편에게 돌아가 "50만엔을 줄테니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달라" 고 부탁, 체류기간을 연장시킨 뒤 다시 도쿄로 간다.

남편 입장에선 '어차피 같이 못살 바에야 돈이나 벌자' 는 심정으로 이 '계약' 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기획취재팀 고종관.이영기.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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