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감사원이 달라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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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조직 개편이 마무리됨으로써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드는 첫 출발이 이뤄졌다.

그러나 조직 통폐합과 인원감축만으로는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능적인 정부가 되기 어렵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각종 규정과 되풀이되는 비리적발 위주의 다 (多) 단계 감사가 공무원들의 창의력과 융통성을 원천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부개혁을 위해서는 일하는 정부를 만들어야 하고 감사원의 역할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크건 작건 현재의 정부조직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소신껏 일하는 공무원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필자가 실제로 만난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도 강하며, 나라를 생각하는 면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조직 속에서는 무사안일.출세주의.직업윤리의 결핍 등으로 바둥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오랜 기간 형성된 낡은 관료조직문화 때문이다.

해당 공무원이 무언가 해보려 하면 온갖 규칙과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위험부담을 안고 무엇을 한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한다.

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실제의 일보다는 문서를 만드는 데 열중하게 된다.

이러니 정부조직에서는 목적달성보다 말썽 회피를 우선시하는 보신주의가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명감을 갖고 국가에 봉사하는 유능한 공복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공무원 조직의 문화가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바로 절차확인과 비리색출 중심으로 이뤄지는 감사 때문이다.

자체검사, 감사원 감사, 국회의 국정감사 등으로 공무원들은 일년 내내 감사와 씨름하다 볼일을 못 볼 지경이다.

이쯤 되면 일을 위해 감사를 하는 것인지, 감사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해진다.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조직이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지를 제대로 감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공공조직은 고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 또한 아니다.

일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조직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의 역할과 기능이 달라져야 한다.

어떤 부서가 애초의 목적을 위해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하기엔 기존의 감사원이 지나치게 사법적이다.

감사원 감사 역시 공무원들에게는 비리 찾기 중심이고, 국민들도 감사원 하면 근엄한 이미지의 포청천을 연상한다.

물론 비리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일은 검찰과 같은 사법기관에 맡기고, 감사원은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들부터 각종 규칙과 규정에서 풀어줘야 한다.

규칙이 지배하는 정부조직을 사명이 리드하는 조직으로 바꿔줘야 한다.

그동안 규정준수 여부를 감사했던 기관만이 어떤 것을 풀어야 할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감사원은 과정에 대한 평가에 우선해 할 일을 했는지를 먼저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최소한의 비용을 부담했는지 그 효율성을 평가해야 한다.

보여주기에 급급해 동강동강 정부조직을 잘라내는 개혁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을 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기능회복이 더욱 중요하다.

국민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원한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내용과 수준의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정부를 원한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려면 정부부문의 조직문화부터 먼저 바꿔야 하고 그 실마리는 감사원이 풀어야 한다.

김한중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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