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평양방문]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정부 고위당국자는 27일 "페리의 방북은 북한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지 협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고 성격 규정을 했다.

그렇지만 평양 방문에서 북.미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남북대화까지 폭넓은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부분 외교 소식통들의 관측이다.

북한 당국도 평양의 사정을 미국측에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하고 싶은 말' 을 페리에게 전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페리 방북의 결실이 남북관계나 한반도 주변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 남북관계 = 페리 조정관이 평양에 들어간 직후 임동원 (林東源) 통일부장관은 "남북간 대화는 상대가 있어 우리 의지대로 일방적으로 될 수는 없다" 며 남북대화 재개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정부는 내심 '당국간 대화' 의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당국회담은 지난해 4월 중국 베이징 (北京) 차관급 접촉 이후 중단된 상태.

그러나 북한이 지난 2월 '하반기중 고위급 정치회담' 을 제안해 놓은 만큼 이를 어떻게든 활용해 보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생각이다.

여기에 페리의 방북이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페리의 대북 메시지 중에는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북측에 촉구하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통미봉남 (通美封南) 전략에 따라 우리 당국을 따돌리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열을 올리는 북한이 얼마나 성의있게 남북대화에 나올지 미지수다.

지난 94년 10월 제네바합의 때도 북한은 경수로를 지원받는 대신 남북대화에 즉각 나서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아직까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 한반도 주변정세 = 페리 방북은 북한의 '맹주 (盟主)' 라고 생각하는 중국에 적지 않은 자극을 줄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생각하고 있는 일본도 적극적인 대북 접근을 시도할 것이 예상된다.

러시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일이 페리 방북을 계기로 '국제무대에 나와도 되겠다' 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고 분석했다.

페리 방북의 결과는 우선 29일 서울에서 열릴 한.미.일 3국 고위 대북정책협의회에서 논의된다.

때마침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27일 러시아로 가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옐친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내 미.일.중.러 4국의 지지기반을 마무리짓는다.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곧 새로운 북.러 우호조약 서명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

또 북한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다음달 3일 중국을 방문해 페리 방북 결과를 비롯한 문제를 중국측에 설명할 예정이다.

한.미.일 3국은 지속적 포용정책으로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낸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지만 중국.러시아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미지수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