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김정일 면담은 '해빙' 신호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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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과 김정일 (金正日) 국방위원장 - .미국 대통령 특사와 북한 최고지도자의 대면은 북.미 관계개선, 남북한 평화공존을 향한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게 분명하다.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 정권 수립 이후 50년만에 처음인 두사람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은 북한이 한.미.일 3국의 대북 포괄접근 제안, 이른바 '페리 구상' 을 긍정 평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희박하지만 페리 - 김정일 면담이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럴 경우 북측이 핵.미사일 개발 등에 집착하면서 폐쇄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해석돼 한반도 주변은 당분간 긴장과 대립이 계속될 것 같다.

미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중인 페리 조정관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 물론 대화내용도 중요하다.

페리와 김정일 만남을 확신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는 "지난 25일 평양에 들어간 페리 조정관이 지금까지 방북계획에 맞춰 제대로 활동하고 있다" 고 전했다.

한.미.일 3국이 24일 일본 도쿄 (東京)에서 검토한 페리 방북 일정이 순탄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얘기다.

페리 조정관은 26일 강석주 (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과 실무회담을 가진데 이어 명목상 국가수반인 권력서열 2위 김영남 (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의 수신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 관계자는 "현재 일정으로 보아 김정일과의 면담은 27일이 유력하나 페리가 평양을 떠나는 28일을 북측이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고 예견했다.

다른 당국자는 "페리 방북의 최대 목적인 김정일 면담에 향후 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 방향이 결정될 것" 이라고 단언했다.

한.미.일이 이처럼 페리 - 김정일 면담에 집착하는 것은 '김정일 = 북한체제' 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김정일의 페리 면담 자체가 대북 포괄접근방안에 대한 북측의 긍정적 신호라고 볼 수 있다" 며 "김정일을 만나야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책임있는 약속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고 반문했다.

페리는 김정일.김영남 등 북한 지도층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한.미.일이 공동 추진할 대북정책의 초안, 즉 '페리보고서' 를 작성할 예정이다.

페리는 김정일 면담이 성사될 경우 ▶핵.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 포기 ▶남북대화.협력 재개 ▶일본인 납치의혹 해소 등을 조건으로 ▶체제존립 보장 ▶경제지원 ▶대미.대일 관계 개선 등을 다짐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지난 94년 제네바합의에 따라 연락대표부 상호 설치 및 북한의 국제기구 진출을 허용하는 등 대북 봉쇄정책 해제 방침을 시사해왔다.

또 북.미간 합의가 이뤄지면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교섭에 나서는 등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이 주변 4강과 교차승인 관계를 갖는 긴장완화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페리 - 김정일 면담은 반세기 동안 '철천지 원수' 였던 미 제국주의와 화해하고, 내부적으로 중국식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할 것임을 뜻한다.

이럴 경우 한.미.일은 국제통화기금 (IMF).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ADB) 등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경제개발자금을 실질적으로 제공하고 식량.에너지 지원, 산업기술. 농업 지원, 민간투자 활성화 등을 추진할 복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페리와 김정일의 만남은 남북한과 주변 4강의 갈등구도를 해소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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