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앞두고 혜암종정에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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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을 닷새 앞둔 세상 풍광 (風光) 이다.

불교 조계종 종정 혜암 (慧菴) 선사가 주석 (駐錫) 하고 있는 가야산 해인사 원당암의 경치도 똑같다.

축대 틈틈이에는 철쭉꽃들이 울긋불긋 피어 있고 산 계곡을 흐르는 물은 짙푸르기만 하다.

가야산 가는 길의 쌈지공원들과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역시 유록화홍 (柳綠花紅)이었다.

혜암 종정을 찾아가 이번 초파일에 부처님이 오시는지, 어쩐지 불탄일 소식을 좀 들어봤다.

- 종정 취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종정이 되셨으니 그동안 누려온 '열반' 이라는 자유를 제약받는 철가 (鐵枷 : 죄인의 머리에 씌우는 형구) 를 쓰신 게 아닙니까.

"신 (身).구 (口).의업 (意業) 3업이 다 불사 (佛事) 인데 뭐는 하고 뭐는 안하는 취사선택의 여지가 어디에 발붙일 틈이 있겠어요. 다만 그전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와달라는 곳이 많았는데 이제 종정이라니까 더 할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차피 육체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다 감당할 수도 없을 것 같고 해서 가급적 바깥출입을 삼갈까 하지. "

-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는 불법의 근본요지는 뭡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문자로는 설명이 불가능해. 입을 열면 이미 어긋나는 게 (開口卽錯) 불교 진리지만 그렇다고 말과 글을 사용하지 않으면 불법을 알릴 수 없는 모순에 빠지고….

부득이 불법의 요체를 말한다면 '마음' 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불법 진리를 여한없이 드러낸 말은 못 되지요.

그저 하는 수 없이 마음이 일체 만물을 만들어낸다 하는데 원래는 그 '마음' 이라는 것도 없는 겁니다."

- 스님께서 수좌들에게 강조하는 다섯가지 행 (行) 있다고 들었는데….

"첫째는 밥을 많이 먹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공부하다 죽으라는 겁니다.

다음은 남을 도울 것, 주지 등의 감투 (所任) 를 맡지 말 것, 일의일발 (一衣一鉢 : 옷 한벌과 밥그릇 하나뿐인 무소유) 인데 이 모두가 승려 본분에 맞는 안분수기 (安分守己) 의 삶을 살라는 얘기요. 자기 분수를 알고,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면 이것이 바로 자기를 지키는 일이요, 도인의 삶이지. 불교의 사회윤리는 간단명료합니다.

윤리적.실천적으로는 성실한 것이고 종교적.심리적으로는 남한테 사기치지 않는 거요. 수행이란 것도 창의력과 직관력을 길러 맡은 바 일에 능률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본래의 청정심으로 돌아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체득 (體得) 하는 겁니다."

- 스님께서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주로 재가불자들이 선수행을 하는 선불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요. 신도들과 함께 오전 3시와 오후 7시에 죽비를 쳐 예불을 올리고 좌선을 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도량의 잡초를 뽑고 채소밭을 가꾸는 등의 울력에도 동참하고요. 신도들과 같이 좌선을 해보니까 다시 없는 최상의 포교방법입디다."

- 종정스님은 잠도 앉아서 자는 장좌불와 (長坐不臥) 로 유명한데….

"장좌불와라는 거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지요. 옛날 조사어록 등에 보니까 이르면 3일이나 1주일에도 돈오견성을 한다는 얘기가 있기에 급한 마음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게 어느새 50년이나 계속됐어요. 이제는 때로 몸이 안좋아 누우려고 해도 10분만 누워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 못 견뎌요. 견성한다고 앉은뱅이 잠만 자다가 끝나는 게 아닌가 싶군. " (혜암 종정은 이 대목에서 허허하며 허공을 향해 큰 웃음을 한번 터뜨렸다)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온 국민에게 청량법음 (淸凉法音) 한 말씀을 해주시지요.

"고생한 만큼 결실을 거두는 법입니다.

농삿일을 해보면 그 철칙을 뼛속 깊이 체감할 수 있지요. IMF사태로 전 국민이 많은 괴로움을 겪었는데 기필코 그 괴로운 만큼의 기쁨이 올 것입니다.

괴로움이 주먹만하면 주먹만한 과일이 열리고, 고통이 수미산만큼 크면 수미산만한 과일이 열리는 응보가 있게 마련입니다."

- 불교가 당장의 21세기, 나아가 3000년대라는 뉴 밀레니엄을 향한 인류문명사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을까요.

"불교의 핵심은 이미 2천5백년 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사유체계를 버리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직관적 일원론과 주관적 유심론을 통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해 왔습니다.

지금 21세기를 맞는 세계 인류의 화두 (話頭)가 변화와 개혁 아닙니까. 진짜 변화와 개혁을 하려면 그 전제조건으로 발상의 전환, 의식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불교의 선사상 (禪思想) 은 발상의 전환을 지향한 과격한 혁명성과 사물의 본질을 곧바로 파고드는 단순성을 강조하지요. 이같은 혁명성과 단순성은 답을 찾아 오늘의 인류가 고뇌하고 있는 화두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의 과제로는 인류문명사의 비극을 초래한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는데 바위나 돌 같은 무정중생 (無情衆生) 까지도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개유불성 (皆有佛性) 이라는 불교 교리를 널리 인식시켜 자연친화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문명으로 미래문명의 방향을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합천 해인사 = 이은윤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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