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 4명 중 1명 8월 이후 ‘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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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체에 다니던 김모(30)씨는 지난달 초 서울 A사립대의 비정규직 입학사정관으로 채용됐다. 심리학 석사학위를 가진 그는 60시간 남짓한 입학사정관 양성교육을 받고 최근 시작된 입시 업무에 투입됐다. 다른 선배 사정관들과 서류·포트폴리오 심사를 하지만 경험이 없는 데다 교육 시간도 짧아 업무가 녹록지 않다. 그는 “학교 측이 능력을 본 뒤 정규직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어서 신분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 입학관리본부장은 “대학별로 갓 채용한 사정관이 제 몫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을 실시하는 47개 대학의 전임 사정관 344명 가운데 김씨처럼 8월 이후 채용된 사람이 83명으로 전체의 24.1%나 됐다. 이번 입시에서 47개 대에서 2만6000여 명의 신입생을 뽑는 사정관 네 명 중 한 명이 전형(9월 9일부터 원서접수) 한 달 전에 ‘급(急)채용’된 것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안민석(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47개대 입학사정관 자료’를 16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올 1월 이후 채용된 사정관은 190명(55.2%)으로 절반을 넘었다. 4월 이후도 169명(49.1%)이나 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3월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에 예산을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채용한 결과다. 안 의원은 “대학들이 급히 채용한 ‘급조 인력’이 전문성과 노하우를 발휘해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왜 급히 채용했나=교과부는 3월부터 사정관제가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선진형’ 입시제도라며 대학에 전형 확대를 독려했다. 지원 예산도 지난해 157억원에서 236억원으로 늘렸다. 그러자 대학들은 앞다퉈 전형 인원을 부풀려 총 선발 인원이 지난해(4555명)의 5.7배로 늘어났다.

서울 B대학 총장은 “대학이 인프라도 갖추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전형 인원을 늘려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강남대·성신여대·단국대·숭실대·강원대 등 올해 처음 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대학은 대부분의 인력을 4월 이후 채용했다. 성균관대는 올해 뽑은 10명 가운데 7명을 8월 이후에 뽑았다.

344명의 사정관 중 정규직은 73명(21.2%)에 불과했다. 특히 사립대보다 국·공립대가 임금 부담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선호했다. 공주대·광주교대·진주교대·울산과기대를 제외한 나머지 국·공립대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안 의원은 “고용 불안정이 대규모 이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일부는 단기간의 경력을 밑천 삼아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북대는 지난해 10명의 사정관을 뒀지만 4명만 남아 올해 5월 6명을 다시 채용했다. 수험생을 둔 주부 배모(46·서울 목동)씨는 “경험도 적은 분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수험생의 창의성과 재능을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송기창(교육학) 교수는 “사정관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는 보조자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며 “대학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인력을 양성해야 제도가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어떤 노력하나=서울대는 여러 사정관과 교수가 전형 결과를 최대 6차례 검증하는 ‘다단계 확인’ 방식을 도입했다. 이화여대는 서류 평가에서 사정관 두 명의 점수를 대조해 차이가 많으면 제3의 사정관이 따로 판정을 내린다. 성균관대·숙명여대·한양대 등은 전형 결과의 정확성을 확인한 뒤 점수에 반영하는 공정관리제를 도입했다. 경희대 임진택 입학사정관은 “경험 부족은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교육은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목·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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