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청각장애 고교생 소총수 최수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신은 그에게서 '소리' 를 뺏어갔다. 대신 놀라운 집중력을 선물했다. 그는 침묵하는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방아쇠를 당긴다.

청각장애 사격선수 최수근 (17.대구공고 2) 이 지난 10일 경남 창원에서 벌어진 제15회 회장기 전국사격대회 공기소총 남고부 정상에 올랐다.

본선기록 5백93점은 대회타이기록이자 이 대회 일반부 우승자 임영섭 (주택은행) 과 같은 점수.대회를 지켜본 사격인들은 "불리한 여건에서도 매우 침착하고 격발타임이 엄청나게 빠르다.

머지않아 한국기록 (5백97점) 과 세계기록 (5백98점)에 도전할만한 유망주" 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첫돌 무렵 수두를 앓은 후 청력이 나빠진 수근은 결국 '난청' 판정을 받았고, 지금은 보청기를 끼고도 자동차 경적만 들리는 정도다. 어머니 허정분 (47) 씨는 외아들에게 닥친 운명에 절망했지만 이내 보통 아이들처럼 당당하게 키우기로 결심, 수화가 아닌 구화 (口話.입 모양을 보며 대화하는 것) 를 익히도록 했고 일반 초등학교에 보냈다.

대구 동원중.대구공고에서 5년째 수근을 맡고 있는 박재식 감독은 오늘의 그가 있게 한 참스승이다. 필담과 구화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함께 데리고 자면서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수근은 '스타트' 명령을 듣지 못해 다른 선수들의 총성을 듣고서야 첫 발을 쏘는 등 불리한 점이 많지만 주위의 응원과 야유 등 외부 소음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장점도 있다.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