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메이커의 편지] 왜 단행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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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단행본 (單行本) ? 10년 가까이 출판사를 경영한 저의 요즘 화두입니다.

말 그대로라면 단행본은 독자들 욕구에 걸맞게 한 권 한 권 다양한 아이템을 순발력 있게 소화해서 정확하고 빠른 정보를 전달해 주는 출판물의 한 형태를 가리킬 터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히든카드를 쪼이면서 배팅하는 심정으로 우악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 단행본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출판사의 이미지야 떡칠이 되든 말든 '한 권 (單) 만 뜨면 된다' 는 그러한 의미의 단행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정보와 부의 소수 독점으로 귀결되는 '20대80' 의 사회는 점점 현실로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양극화는 출판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1만 개가 훨씬 넘는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상위 20~30개 출판사가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줍니다.

결국 다양성을 담보하고 견인해내는 중간 허리 역할을 하는 출판사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생존논리를 내세우며 호시탐탐 크게 한 건 노리는 개개의 출판사 탓을 할 수만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단행본다운 단행본을 내지 못하는 출판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뭐라해도 다시 출판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 환경의 어려움이야 말로 다 못하지만 책 만드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문제의 본질을 바로잡겠습니까. 특히 요즘 '한 권 한 권 (單) 최선을 다한다 (行)' 는 단행본의 의미을 새삼 되새겨 봐야하지 않을지. 출판 마케팅이나 유통 문제도, 독서 습관 정착도, 도서관 문제도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겁니다.

한 마디 더. 지난 어린이날 저는 '미스터 초밥왕' 이란 37권짜리 일본만화를 아이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생선초밥 한 가지를 가지고 풀어낸 이야기 솜씨가 가히 신의 경지 비슷했습니다.

그 치밀한 구성력과 풍부한 상상력, 거기에 작가의 철학까지. 제가 일본만화를 칭찬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책을 사고 난 단상 (斷想) 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만든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그 책을 굳이 돈 주고 사서 내 아이들에게 읽히겠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유재건 도서출판 '그린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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