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2년차 대통령의 리더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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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임기가 5년인 한국 대통령제에서 집권 둘째해의 특징은 '자기확신' 이다.

국정운영에 익숙해지고 권력관리의 묘미를 알 만할 때다.

국가원수로서의 각종 의전 (儀典) 은 흐뭇한 자신감을 준다.

고급 정치정보와 군사.외교기밀을 다루면서 책임감과 함께 자신이 지닌 힘을 재삼 깨닫게 된다.

김영삼.노태우 대통령도 2년차 중반께 "대통령을 하는 멋과 맛을 알기 시작했다" 고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기억한다.

심지어 YS는 국정 주도세력 없이도 혼자 개혁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까지 가졌다.

통치의 영 (令)에 거침이 없었다.

2년차 대통령은 모든 국정과제를 스스로 다루려는 만기친람 (萬機親覽) 의 의욕이 넘친다.

청와대의 역할공간이 커 보이며, 그만큼 힘이 쏠린다.

상대적으로 집권당은 작아진다.

이번에 국민회의가 자민련과 몇달 궁리해 내놓은 정치개혁안을 대통령 의중을 감안해 하루만에 버린 것이 그런 예다.

내용에 문제가 많았다 해도, 당의 체면은 형편없이 구겨졌다.

김영배 (金令培) 총재권한대행이 행동반경을 넓히겠다 했지만 전임 조세형 (趙世衡) 대행과 오십보백보라는 것도 대통령 2년차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젊은 피' 가 강조되고 선거구까지 줄어드는 판이니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의원들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논쟁도 청와대가 '조용히 하라' 고 한마디 하자 쑥 들어갔다.

두 기관의 감정대립으로 볼썽사납긴 했으나 수사권 독립은 건전한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경찰이 문제를 제기한 데는 집권층 일각이 내밀히 지원한 흔적이 보인다.

그렇다면 경찰은 권력의 눈치를 보아 얘기를 꺼내고, 권력의 경고에 뒤로 빠진 셈이다.

2년차 대통령의 위력이다.

그런 만큼 집권 둘째해 중반에 들어설 무렵부터 과신과 독선의 함정이 여기저기 도사린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현장에서도 명분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리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그렇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얘기대로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턱없이 줄여 신고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 해도, 업무장악력이 탁월하다 해도 정책현장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을 양심불량으로 탓할 수만은 없다.

연금 붓는 것을 세금내는 것처럼 생각하니 아무리 홍보한들 제대로 신고할 리 없고, 세금 모범생인 봉급자만 손해보는 것이다.

그런데도 행정일선에서 거칠게 다룬다면 직장인들은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정책의 일관성은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사안에 적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민심 거스르기로 변질된다.

교육개혁 현장도 그렇다.

金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 교육입국을 제창해 왔다.

특히 군사부일체 (君師父一體) 를 좋은 전통으로 내세우며 "교육열정을 높이기 위해 선생님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돼야 한다" 고 다짐했다.

문제는 교육개혁의 흐름이다.

선생님들을 촌지나 받는 집단으로 비치게 만들었다.

교육부는 개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정년단축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을 거론하지만 어쨌든 대통령의 뜻과 정책현장이 다르게 돌아가 버렸다.

이런 상황이 오래 가면 "권력이 현장을 외면하고 목표에만 집착해 정책독주를 한다" 는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2년차 중반에 요구되는 것은 인사와 주변관리의 엄격함이다.

작은 일탈도 구설 (口舌) 을 탄다.

유종근 (柳鍾根) 전북지사의 행태가 그런 예다.

서울 사택에 대한 정식 현장검증을 피하면서, 현장검증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기발함이 놀랍다.

金대통령의 홍보참모를 한 경험에 따른 것인지는 몰라도 옹색한 처신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이는 '도둑의 말에 놀아날 것이냐' 는 논란과는 다른 문제다.

사건의 초점이 공인 (公人) 의 처신문제로 옮겨가 버렸다.

그는 민선지사이면서 대통령 경제고문이다.

경제고문은 청와대 직제에도 없는, 대통령의 신임으로만 유지되는 자리다.

현장검증을 외면하는 편법은 '권력의 위압' 이라는 인상을 주고, 그 부담은 결국 대통령한테 돌아간다.

YS는 집권 둘째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주도세력을 형성하는 데 소홀한 사이에 아들의 국정농단이 본격화했다.

2년차 중반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제 유종근식 편법, 이해찬 (李海瓚) 식 개혁, 현장을 수렴하지 않는 정책은 모두 따져봐야 한다.

이것이 DJ 2년차 리더십의 과제다.

박보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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