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재래시장 맞아? 깜짝 경매, 반짝 세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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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장경영지원센터 정석연 원장(맨 왼쪽)이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 특가 세일 현장에서 장을 보러 온 손님들에게 배추 등 상품을 권하고 있다. [시장경영지원센터 제공]


“공장 소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천일염 싸게 들여가세요.”

지난 주말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1동 신영시장. 물건을 가득 쌓아 놓고 파는 상인과 오가는 시민으로 시장 안은 분주했다. 비를 가릴 수 있는 시설물과 전광판 등으로 깨끗하게 단장된 곳이지만 재래(전통)시장 특유의 활기도 가득했다. 4~5년 전 대형 마트에 밀려 활기를 잃었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시장은 2006년부터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깜짝 경매 등 다양한 마케팅 방식을 도입해 기업형 시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시장경영지원센터 정석연(51) 원장은 “이 시장에는 산지에서 바로 들여온 농수산물 등 일반 마트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물건이 많다”며 “가격은 물론 서비스·상품 구색·홍보 등 모든 면에서 대형 마트와 경쟁할 수 있어야 시장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웰빙야채’ 가게를 운영하는 김승남(44)씨는 전남 신안군에 사는 친척을 통해 현지에서 직접 가져온 천일염을 팔고 있었다. 김씨는 “재래시장에도 좋은 물건이 많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양한 마케팅 기법 전수=점포 109개를 둔 신영시장은 1980년대 초 생겨났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인근에 대형 마트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손님이 뚝 떨어졌고 시장은 활력을 잃었다. 좁고 불편한 골목과 불친절한 서비스 등이 문제였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해 온 상인회장 김동용씨는 “변화가 필요했지만 업종과 경력·규모가 제각각인 상인들의 뜻을 모으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아 2006년 시장경영지원센터의 컨설팅을 받아 개선에 나섰다. 심의를 거쳐 국비·지방비 등을 지원받아 비가림 시설과 고객 주차장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겉모습만 바꿔서 될 일은 아니었다.

정 원장은 “예전에는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에 물건만 있으면 손님이 왔다”며 “하지만 물건이 넘치고 유통 시장이 다변화되는 등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당시 재래시장과 상인은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장지원센터는 ‘상인대학’ 등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상인들이 상황 변화와 문제의 심각성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인회장 김씨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상인들이 마케팅 등 각 분야 전문가의 교육을 받으며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상인이 교육을 마친 2007년부터는 각종 이벤트와 깜짝 경매, 반짝 세일 등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썼다. 시장지원센터도 일부 비용을 지원하며 시장 활성화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시장을 찾는 손님과 매출액이 2004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재래시장 전망 여전히 밝다”=정 원장은 전국에 1500개가 넘는 재래시장이 모두 예전처럼 번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경쟁력만 갖추면 많은 시장이 되살아날 것으로 봤다.

정 원장은 “전통시장은 서민의 삶을 지탱하고 애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며 “웃음 섞인 대화가 오가는 대면 판매의 즐거움과 넘치는 인정은 현대식 마트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주요 생필품의 가격이 여전히 마트보다는 14~28%쯤 싸다는 것도 강점이다.

시장지원센터의 지원을 통해 성공적으로 탈바꿈한 재래시장도 차츰 늘고 있다. 82년부터 노점상 위주의 골목시장으로 형성됐던 서울 방학동 도깨비 시장은 인근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하지만 시장지원센터의 컨설팅을 통해 매주 3회의 ‘반짝 세일’을 도입하고 마트식 이동 판매대 설치와 대형 전단 제작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마케팅 활동을 했다.

그 결과 하루 평균 시장 이용객 수가 2004년 2000명 선에서 2006년에는 5000명, 주말에는 1만2000명에 달할 만큼 성장했다.

전남 장흥의 토요시장은 변화된 소비자 생활에 맞춰 전통적인 5일장을 토요일마다 여는 주말시장으로 바꿔 성공했다. 이곳의 특산물인 장흥 한우 등 특산품 매장을 유치하고, 시골 장터 고유의 느낌을 낼 수 있게 장흥군 거주 65세 이상 노인이 직접 기른 작물을 팔 수 있도록 ‘할머니 장터’를 꾸몄다. 이 장터는 이제 장흥을 대표하는 명물 중 하나가 됐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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