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서울 마포구 강정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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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학 1학년 때 언니가 형부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고대하던 형부였지만 언니를 뺏기는 것 같아 섭섭했다.

분위기 좋은 양식집에서 처음 만난 형부는 듣던대로 잘 생겼고 말도 잘 했지만 어째 의사랍시고 언니의 기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 고향에 군의관으로 와있는 동안 아버지가 제법 땅도 있는 세도가란 걸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언니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우리 집안을 노린 도둑처럼 보였다.

언니와 형부는 90년 결혼했지만 내 눈에 형부가 예뻐 보일 리 없었다.

가끔 처가에 오면 장식장 안의 비싼 양주나 눈독들이는 것 같았고 병원을 세우려면 돈이 얼마가 든다고 아버지한테 말하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집안에 큰 일이 터졌다.

얼마전 아버지가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땅을 비롯한 재산 역시 아버지 실수로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갔다.

우리는 그야말로 몸뚱이밖에 없는 알거지가 되었다.

이제까지의 내 생각대로라면 형부가 우리 곁을 떠날 때가 온 것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재판이 열리던 날 형부는 어머니와 나, 대학생인 남동생을 집으로 초대했다.

침울한 가족들에게 형부는 술 한잔씩을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강씨 집안의 맏사위로서 처가의 모든 짐은 내가 지겠다. 처남이 장가갈 때까지 장모님은 우리가 모실테니 처제는 여기 걱정은 말고 서울에 올라가 열심히 살아라. 처남은 정신차리고 공부나 잘하고. "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떨궜다.

특히 나는 형부와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형부를 그동안 그토록 미워했을까. 이제라도 형부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서울 마포구 강정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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