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리노 세은부총재 세계언론자유의날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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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잘못된 정보는 경제를 왜곡"

동아시아의 금융위기 이후 이같은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각계에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세계은행에서도 그 과정을 점검하고, 과거 '동아시아의 기적' 이 가능했던 시기에 의미있었던 경제.사회적 처방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첫번째 교훈은 제도적 요소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종래에는 개방된 시장과 자유로운 외환거래가 성장을 자극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내부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은행과 금융분야를 규제하는 기관과 제도가 확립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경제발전 과정의 이러한 측면은 이제 자카르타에서 서울, 방콕에서 하노이에 이르기까지 세계은행의 중심과제가 됐다.

세계은행은 각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와 국내저축의 흐름을 감시.규제.지원하는 역량을 강화토록 하는 데 인적.재정적 지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하면서도 주목을 덜 받아온 교훈은 제대로 된 정보의 힘이 균형잡힌 성장을 지탱해주는 반면 잘못된 정보와 언론 통제는 성장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최근 2~3년간 우리는 정보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지켜보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인터넷과 E - 메일을 통해 과거 어느 때보다 다양한 정보에 보다 신속히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정보는 사실상 세계화.즉시화됐고, 검열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졌다.

현재 유통되는 정보의 양과 속도가 엄청나며,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화선과 모뎀, 그리고 컴퓨터 뿐이다.

정보가 경제발전이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투자 의사결정은 정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보가 신속하고 신뢰도가 높을수록 이러한 의사결정에 감정이나 군중심리가 작용할 여지가 적어진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세계적인 공황을 초래하지 않고도 5백포인트씩 등락이 가능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정보가 정확하고 투명하며, 그 정보를 누구나 같은 시간에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이나 개발의 분야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세계은행이 아무리 총력을 기울여도 특정 국가 관리들의 부패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세계은행의 대출절차조차 별 역할을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신문에 세계은행 대출의 구체적인 내용 (무엇을 위해 얼마를 빌려 누구에게 주었는지 등) 이 낱낱이 보도된다면 어떤 관리에게 책임이 있는지 금방 드러나게 된다.

언론이 진정으로 자유스러우려면 기득권층을 확실히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은행과 우리의 고객인 많은 개발도상국들에 이는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깨끗하고 개방적이며 효율적인 제도와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또 부패가 투자자들의 신뢰와 해당기관 (정부) , 그리고 투자의 의사결정을 얼마나 좀먹는지를 잘 인식하고 있다.

분석과 탐사보도에 잘 훈련돼 있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 자유언론은 아마도 한 나라가 세계화된 경제체제가 제시하는 도전에 대응하고, 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데 최고의 자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세계은행은 돈을 빌려간 나라에 언론의 자유를 요구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권장하고 한국.인도네시아.태국처럼 언론의 자유가 신장된 곳에서는 이를 적극 지원할 수도 있다.

동아시아의 위기는 언론자유가 경제발전 과정에서 당연한 과제임을 부각시켰다.

앞으로 언론자유라는 중요한 주제가 개도국 전체를 통해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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