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고승덕파문'계기 '밀실공천' 개선론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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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승덕 파동' 의 책임 소재를 高변호사 개인의 정치 행태 쪽에만 맞춰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30일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당선만을 따지는 후보 선정과 지도부의 밀실공천 풍토가 '철새형' 정치지망생을 양산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공천 문화.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는 여야가 강조하는 젊은 피 수혈과 새 정치론은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야 각당의 당헌.당규는 공천체제를 비교적 잘 갖춰 놓고 있다.

오랫동안 야당을 했던 국민회의의 제1 심사기준은 민주주의 공헌도다.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제1 심사기준은 국가 공헌도. 3당 모두 당선가능성의 비중이 겉으로는 가장 낮다.

그러나 국민회의 정동채 (鄭東采) 기조위원장은 "솔직히 당선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는 정당은 없다" 고 지적했다.

이념.개혁성.도덕성을 따지긴 하지만 해당 지역의 여론조사 결과가 공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여야 모두에 작용한다.

그는 "여론조사를 좌우하는 것은 정책능력.인간성보다 인지도.이미지" 라며 "맹점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갈 때가 많다" 고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 송파갑에 대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TV 출연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고승덕씨가 줄곧 1위를 기록했다.

高씨는 그런 점 때문에 어느 당으로 출마해도 당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김문수 (金文洙) 의원도 "이념보다 인기.지명도를 좇아 공천하는 당 풍토가 큰 문제" 라고 지적했다.

또 "3金 보스정치에서 횡행했던 위로부터의 낙하산 공천 관행이 지금 야당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고 비판했다.

실제로 이번 파동에서 高씨의 한나라당 초기접촉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이회창 (李會昌) 총재, 그리고 황우려 의원 등 총재측근들에 불과했으며, 신경식 사무총장조차 공천결정 이틀 전 (24일)에 이 사실을 알았을 정도였다.

결국 공천과정의 밀실성, 보스 중심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의 경우 계파 몫이라는 과거 야당의 관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구당 대의원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공천제' 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도적으로 보면 3당은 모두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난 3.30 안양시장 보궐선거에서 대의원 선출방식을 택한 국민회의는 인물선택 실패라고 분석했다.

한 지구당에 2백명쯤밖에 안되는 대의원들의 표심 (票心) 은 조작되기 쉬운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의원 수를 1천명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거나 일반 주민들도 참여하는 미국식 예비선거제 도입 문제가 거론된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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