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보쌈파문' 정가 때아닌 찬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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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권이 '고승덕 사태' 로 급기야 벼랑 끝에 섰다.

한나라당의 일대 공세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高씨 회유.납치' 주장을 일축하며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자세가 원체 완강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는 29일 "이제 여권의 작태를 앉아서 볼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며 정부조직법안과 노사정위 법안 심의를 중단시키고, 재선거 거부까지 검토키로 했다.

이날 고향 충남 예산을 방문 중이던 李총재는 황급히 귀경해 총재단회의를 소집, 단호한 대처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는 "어느 정도 여야관계 정상화의 가닥이 잡히는가 싶더니 또다시 바람이 일고 있다" 는 말로 가파른 대치상황을 예고했다.

사실 3.17 총재회담 이후 말만 대화정국일 뿐 한치의 여유없이 정국을 꾸려온 여야 수뇌부다.

이부영 (李富榮) 원내총무도 "선거만 하면 부정선거를 하고 남의 당 후보가 마음에 안들면 협박으로 사퇴시키는 등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상황에서 법안 심의에 응할 수 없다" 고 초강경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투쟁의지를 다지는 것은 高씨의 후보직 사퇴가 자의 (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한달전 3.30 재.보선 불.탈법 선거운동의 여진이 가라앉기도 전에 여당에 의해 공천 하루만에 후보를 빼앗긴 상황을 방치하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이들을 정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쐐기를 박아놓지 않으면 자칫 내년 총선까지도 여당에 마냥 끌려다니게 된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더구나 당내 불만을 무마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석연치 않은 高씨 공천에 대한 당내의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덜컥 공천했다가 망신당하게 됐기 때문에 더 펄펄 뛰는 측면도 있다.

李총재는 고승덕 파문으로 입은 상처가 6.3 재선거로 이어지는 것도 막아야 한다.

강경 대응으로 오히려 대여 기선을 잡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의석 한 석을 포기하더라도 내년 총선을 위해 재선거를 거부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인식을 가진 李총재는 "아무리 장인 (朴泰俊자민련총재) 이라고 해도 여당 총재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당 후보를 사퇴하게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정말로 불쾌하고 국민의 희망을 없애는 정치를 또 해야 하나" "이 나라는 한 개인이나 한 정당의 나라가 아니다.

윤봉길 (尹奉吉) 의사가 이 나라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일신을 초개같이 버렸듯 나도 이 나라가 정도로 가도록 모든 것을 바칠 것" 이라며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김진국.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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