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 소녀가 팬시상품 '개발실장'…서교초교 서우연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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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몇년전 '빅' 이란 영화가 있었다.

마법에 걸려 덩치만 어른이 된 꼬마가 장난감 회사에 취직,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만들어 히트를 친다는 내용이다.

'어린이 용품은 어린이의 시각에서 만들어야 성공한다' .이런 '눈높이교육' 의 교훈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곳이 있다.

주인공은 액세서리.팬시용품 전문업체인 '쏨씨' 의 '상품개발실장' 인 11세짜리 서우연양 (서교초등학교 4년) .공식 직함은 아니지만 직원 사이에서는 이러면 바로 통한다.

徐양의 역할은 방과후 쏨씨의 신촌 매장에 들러 각종 액세서리 부자재를 이용해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고 노는 것. 주판알 같이 생긴 재료로 팔찌나 목걸이를 만들며 즐거워한다.

"그저 학교 갈 때 달고 싶은 예쁜 액세서리를 만들 뿐입니다. " 매장 한편에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메모하고 스케치하는 사람이 있다.

이탈리아 패션스쿨 '마랑고니' 출신의 디자이너 정혜진 (28) 씨. 徐양이 만든 액세서리를 관찰하고 다듬어 시장에 내놓을 물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개발된 제품은 히트작만도 알파벳 글자가 새겨진 주사위로 자신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만드는 '이니셜 핸드폰 줄' .우산반지.구슬나라 목걸이 등 10여가지에 이른다.

이니셜 핸드폰 줄은 최근 서너달새 무려 10만개나 나갔고, 미국.인도네시아 등과 수출협상도 진행 중이다.

徐양이 회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가을. 이 회사 'DIY액세서리 점포' 의 단골 손님인 그의 솜씨를 눈여겨보던 디자이너 정씨의 눈에 띄면서부터.

한동안 徐양의 '작품' 을 훔쳐보던 회사측은 아예 "아무 때나 와서 마음대로 놀아라" 고 배려했고, 한걸음 나아가 윤동근 사장이 徐양의 부모에게 "정기적으로 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 고 요청해 결국 "공부에 지장없는 범위 내에서 매장에 가도록 하겠다" 는 약속을 받아냈다.

윤사장은 "우연이의 아이디어로 회사가 매달 2천만~3천만원어치의 도움을 받는 것 같다" 고 말했다.

회사측은 徐양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달 60만원을 '장학금' 조로 지불하고 있다.

어머니 차씨는 "5세때 NHK주최 세계 미술대회에서 은상을 받는 등 미술감각과 몸치장에 재능이 있다" 면서도 "자칫 너무 상업적으로 흘러 창의력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 이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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