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 (小澤一郎) 당수는 일본 정계의 태풍의 눈이다.
그는 93년 집권 자민당을 뛰쳐나와 신생당을 만듦으로써 정치개혁에 불을 댕긴 인물이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의외성이랄까, 독창성은 백범 묘소를 참배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서울을 방문 중인 그를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만난사람= 김영희 본사 대기자]
▶김 = 한국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오자와 = 지금은 한.일 두나라가 마음을 열고 협력할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를 만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김 =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공작선의 일본영해 침범이 일본의 전역미사일방위 (TMD) 체제 구상과 방위지침 관련법의 제정을 촉진하게 될까요.
▷오자와 = 심정적으로는 영향이 있겠죠. 지금까지 일본에는 국가의 주권을 지키고 전쟁의 위기에 대처하는 관리시스템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TMD 구상의 실현을 예견하는 건 비약입니다.
▶김 = 오자와 당수는 평소 자위대의 역할과 일본의 국제적 역할 증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통 국가론' 을 주창해 왔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오자와 = '보통 국가론' 은 자위대의 역할이 아니라 일본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겁니다. 다른 나라들이 다 하는 일을 일본만 안된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헌법개정 문제는 지금의 헌법을 현실에 맞게 해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헌법을 고치려면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김 = 유엔이 아닌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가 코소보 사태에 무력개입한 것은 국제분쟁의 새로운 해결 방식입니다. 인권보호의 명분으로 국가주권을 침범해도 되는 겁니까.
▷오자와 = 나토 개입은 안보체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는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국제분쟁에서도 민주주의와 민생안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김 = 백범 김구선생 묘소를 참배하는 동기는 뭡니까.
▷오자와 =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용기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서로 싸운 사람들도 용기있는 상대는 존경합니다.
▶김 = 북.일 관계개선 전망은 어떻습니까.
▷오자와 = 일본도 한국의 햇볕정책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일본 하늘 위로 로켓이 날아가고 괴선박이 영해를 침범하는 것은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입니다. 불신의 해소 없이 근본적 관계개선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김 = 일본 경제는 올해 플러스 성장을 이룩할까요. 일본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잘 되어 갑니까.
▷오자와 = 플러스 성장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관료의존 체질을 버리지 못하면 위기탈출은 어렵다고 봐요. 일본은 한국같이 대담한 결단을 할 수 없어요. 일본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하고 있지만 실업이 증가해 걱정입니다.
▶김 = 아시아통화기금 (AMF) 과 엔화 공영권 구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오자와 = 그런 구상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적 신뢰가 전제돼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돈만 많다 뿐이지 전반적 신뢰가 부족해요. 미국이 협력하고 일본이 큰 부담을 떠안는 지금의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김 = 한국과 일본 정치의 장단점은 어떤 것들입니까.
▷오자와 = 두 나라가 문화와 민족성이 닮은 만큼 정치의 장단점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일본 정치의 단점은 외국과의 교류 경험이 적고 국내 문제에만 신경쓰는 겁니다. 단결심이 강해 정책방향이 정해지면 쉽게 집행할 수 있는 것은 강점이지만.
▶김 = 한국 정치인 가운데 인상 깊었던 인물을 꼽아주시죠.
▷오자와 = 박태준 자민련 총재와는 친한 사이고, 김종필 총리도 몇번 만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직 개별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만 지난해 방일때 한.일 우호관계 구축을 위한 결단에 감명받았습니다.
▶김 = 21세기 초반에 중국과 일본이 패권경쟁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오자와 = 없을 겁니다. 패권은 힘을 의미하는데 일본은 아직 주권국가를 뒷받침할 체제 정비도 제대로 안돼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