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사법연수원서 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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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이 14일 젊은 예비 법조인들을 찾아 '인간존중' 과 '공정한 판결' 을 당부했다.

이날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 7백여명을 상대로 '법과 인간' 이라는 주제로 가진 초청강연에서 金추기경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 이라며 "우리 헌법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가진다" 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헌법에 그렇게 써있어서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렇기 때문에 헌법에 규정된 것" 이라며 "법의 근본정신은 인간이 존엄하게 살도록 돕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추기경은 "나도 오랫동안 전화도청이나 우편물 검열 등 동향파악의 대상이었다" 며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고문에 의한 자백만으로 유죄판결이 난 적도 있고 '국민의 정부' 에서도 여전히 공안사범 출소자에 대한 사찰이 남아있다" 고 꼬집기도 했다.

분위기가 딱딱해지자 추기경은 "누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데 '삶은 계란' 이라고 소리치는 계란장수 말을 듣고 인생의 본질은 계란이라고 하더라" 는 농담으로 장내를 웃겼다.

하지만 추기경은 곧바로 "국민들이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지, 아니면 법이 무섭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며 "인간이 왜 중요한지를 아는 법조인, 당사자들이 판결을 수용하도록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법조인이 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강연 말미에 '죄를 용서하라' 는 종교의 가르침과 사형까지 내려야 하는 판사의 업무를 어떻게 조화시킬 지를 묻는 연수생에게 "인간으로선 용서하되 국가를 대표한 법관인 만큼 판단은 공정해야 한다" 는 추기경의 답에는 경륜이 묻어났다.

그는 마지막으로 "법은 인간을 위해 있다는 신념에서 모든 인간을 이웃으로 존경하는 그런 법조인이 돼달라" 고 당부했고, 추기경이 강당을 벗어날 때까지 연수원생들은 기립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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