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행정 혼선 잦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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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시가 최근 부서간 업무조율을 거치지 않은 졸속 사업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행정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7일 백지화 발표가 난 서대문구홍은동 유진상가 철거계획 소동이 그 대표적 사례. 시 재산관리과가 40여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유진상가에서 보수공사를 진행시키고 있었지만 시 건설국은 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철거 계획을 세우면서 일은 빚어졌다.

건설국과 재산관리과가 각자 상반된 내용의 계획을 세워 열흘 간격으로 고건 (高建) 시장에게 결재를 받아냈던 것이다.

또 지난달 29일에는 도시계획국의 '종로의 걷고싶은 거리' 계획에 대해 교통관리실이 발끈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시계획국은 현재 왕복8차로인 종로 보신각~종묘앞 1㎞ 구간을 주중에는 6차로로, 주말에는 4차로로 축소한 뒤 줄어든 차로를 녹지 및 보행공간으로 전환해 종로를 '보행자 천국' 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이날 발표했다.

그러자 교통관리실은 "종로의 차로를 줄일 경우 병목현상으로 동대문~마포까지 정체가 이어지게 된다" 며 "불가능한 안" 이라고 일축해버렸다.

도시계획국이 高시장 공약사항인 '걷고싶은 거리 만들기' 를 추진하면서 관련부서인 교통관리실과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현상공모를 통해 설계안까지 선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각자 독단적인 계획을 추진하는 동안 시민의 세금은 새나가고 헛수고가 될 일에 행정력만 소모한 셈이다.

고려대 행정학과 이종범 (李宗范) 교수는 "이런 모순된 결재로 빚어지는 시간.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각 부서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며 "^전산망을 통한 정보 공유장치를 만들고 ^관련 부서장 회의를 정례화시키는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 말했다.

하지만 시는 이런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후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는 커녕 발뺌하기에만 급급했다.

건설국 관계자는 유진상가 철거계획에 대해 지난 1일 기자설명회까지 가졌음에도 7일에는 "발표과정에서 혼선이 있어 와전됐을 뿐 원래 철거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는 어이없는 해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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