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세상보기] 늙은 피, 젊은 피에 대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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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치권에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부연 (敷衍) 하는 설명 가운데 정곡 (正鵠) 을 찌르는 것은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말한 젊은 피는 나이가 기준이 아니라 정신과 생각이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었더라도 생각이 젊으면 젊은이요, 나이는 젊어도 생각이 늙으면 늙은이라는 것이다.

이 명쾌한 설명에 따라 피 (나이) 와 생각 (정신) 의 조합 (組合) 을 만들어 보면 네 부류가 등장한다.

그 네 부류는 누구이고, 젊은 피 수혈론에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첫째, '피는 늙었어도 생각은 젊은 부류' 를 들 수 있다.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에 안도 (安堵) 의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65세를 넘은 노령, 55세를 넘은 고령이라고 해서 고려장 (高麗葬) 을 지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로구나. 나같은 만년청춘은 역시 알아주는구나. 세대교체? 아직은 어림도 없다!

둘째, '피는 젊어도 생각은 늙은 부류' .대변인의 설명에 실망을 느낄 사람들이다.

나이가 젊다는 참신성 하나만으로 개혁의 친위대가 되려 했는데…. 애늙은이의 정체가 폭로되면서 가장 확실한 제외 대상이 됐으니 이 일을 어쩐다?

셋째, '피도 늙고 생각도 늙은 부류' 가 있다.

이 부류는 아예 거론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어르신 대접을 받는 부류다.

몸이 늙었으면 생각이라도 젊어야지 둘 다 노화단계에 있다면 누가 거들떠나 보겠나.

넷째, '피도 젊고 생각도 젊은 부류' 가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향후 정치권 수혈작업에서 가장 큰 변수 (變數) 로 작용할 사람들이다.

아울러 대변인의 부연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다.

정치권 진입을 호시탐탐 노려온 우리 신진기예를 놓아두고 무슨 '생각이 젊은 늙은이' 를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래가지고 정치권 물갈이 잘도 되겠다.

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하는 신진기예의 공격은 최대 라이벌로 등장한 만년청춘에 계속 집중된다.

당신들은 기득권의 확대에만 골몰하오. 경험이 많다는 당신들은 노회 (老獪) 한 수법으로 개혁에 저항하고 있잖소. 당신들에게 의존하면 맹세코 말하건대 피갈이는커녕 물갈이도 안될 거요. 그러자 만년청춘이 반격한다.

조만간 인간은 별 무리없이 1백20세를 살걸세. 55, 65세가 뭐가 많다는 겐가.

80세에 연애편지를 쓴 괴테, 죽는 순간까지 젊은 연인의 품에 안긴 피카소를 못봤나. 잔말 말고 자네들은 내 정치 도제 (徒弟)가 돼 나와 세대연합을 이루세. 그런데 이 공방전이 더욱 가열된 것은 도저히 논쟁에 끼일 수조차 없을줄 알았던 애늙은이와 어르신 그룹이 반격에 나서면서부터다.

피는 젊어도 생각은 늙은 이른바 애늙은이들은 신진기예라는 말에 닭살이 돋는다고 한다.

자신들의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는 결코 불순물이 아니며 더 효용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피도 젊고 생각도 젊은 부류는 결국 애송이에 불과하다며 이렇게 비쭉댄다.

현실과 동떨어진 개혁 때문에 피곤해진 세상, 애송이들 데리고 잘도 꾸려나가겠소!

거센 공격을 퍼붓는 쪽은 피도 늙고 생각도 늙은 어르신 그룹. 이들은 몸이 늙으면 생각도 늙는 것이 순리라고 말한다.

늙는 것은 곧 원숙이고 지혜라며 이들은 이렇게 비쭉댄다.

순리를 거역하고 영원한 청춘인 것처럼 날뛰는 늙은이들은 '또라이' 와 다름없소. 이 험한 세상, '또라이' 들 데리고 잘도 헤쳐 나가겠소!

신규 진입과 아성 고수를 노리는 젊은 피와 늙은 피의 설전은 여야 가리지 않고 확산될 전망이다.

정치개혁 입법에서 국회의원 숫자가 줄면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노혈 (老血) 과 청혈 (靑血) 의 뜻을 둘러싼 함축 (含蓄) 의 뚜껑이 벗겨지지 않는 지금 김칫국부터 마시는 쪽은 젊은 피인가, 늙은 피인가.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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