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영월 책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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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 웨일스의 와이강 (江)가에 위치한 헤이 온 와이는 색다른 곳이다.

인구 1천4백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인 이곳은 세계 최대의 '헌책 마을' 로 유명하다.

싸구려 문고본에서 희귀 초판본까지 분야별로 37개 고서점들이 모여 있는데, 소장하고 있는 도서가 1백만권을 넘는다.

또 헤이 온 와이는 19세기 영국의 시골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매년 5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헤이 온 와이는 60년대초만 해도 버려진 곳이었다.

중세때 세워진 허물어진 고성 (古城) 아래로 탄광촌이 형성돼 있었으나 석탄 경기가 사라지면서 황폐해졌다.

이처럼 초라한 모습이었던 헤이 온 와이가 오늘날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한 데는 한 애서가 (愛書家) 의 기발한 착상과 끈질긴 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리처드 부스는 1961년 먼 친척으로부터 헤이 온 와이의 낡은 영화관을 물려받았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고서점을 열기로 결심했다.

원래 고서 수집광이었던 부스는 헌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저울로 달아 ㎏당 (當) 으로 팔았다.

헤이 온 와이에 가면 헌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부스는 유럽과 미국에까지 건너가 고서를 수집하는 한편 옛 소방서.철물점 등을 차례로 고서점으로 개조했으며, 마침내 마을의 상징인 헤이성까지 고서점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헤이 온 와이는 부스의 책왕국이 됐다.

실제로 부스는 지난 77년 4월 1일 헤이 온 와이를 독립왕국으로 선포하고 스스로 '서심왕 (書心王) 리처드' 가 됐다.

국가 (國歌) 를 만들고, 여권을 제작했으며, 쌀종이로 만든 '먹는 화폐' 를 만들었다.

헤이 온 와이는 비단 헌책 뿐 아니라 골동품.금은 보석.공예품으로 유명하며 등산.골프.커누.승마 등 다양한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매년 5월 마지막 주 헤이 문학축제를 개최하는데, 영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저명한 문인들이 참석한다.

또 늦여름에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는 기성.신인가수들이 대거 참가해 경연을 벌인다.

지난 3일 강원도 영월군 서면 광전리 속칭 골말에서 국내 최초로 책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고서점 '호산방' 을 운영하던 박대헌씨가 문 닫은 초등학교 분교 일부를 빌려 만든 것이다.

박씨는 앞으로 마을 전체를 한국의 헤이 온 와이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박씨의 책 사랑이 좋은 열매를 맺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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