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 명약"美제약업체들 기존약품 재활용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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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구약 (舊藥) 이 명약 (名藥)' 당초 심장병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용도가 달라진 비아그라의 대히트 이후 미국 제약업체들이 기존 약품의 '또다른 효능 찾기' 에 발벗고 나섰다.

실제 몇몇 의약품은 당초 용도 외에 다른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어 "잘만 하면 한가지 약을 두 번 팔 수 있다" 는 기대감이 높아가고 있다.

미 식품의약청은 최근 글락소웰컴의 에이즈 치료제 3TC를 B형 간염 치료제로 용도를 바꿔 판매하는 것을 승인했다.

또 머크는 전립선치료약에 부작용으로 발모 효과가 있다는 점에 착안, 이를 아예 발모제로 다시 개발해 내놓았다.

일라이릴리는 우울증 약 프로작을 월경전 증후군 치료제로 승인해 줄 것을 FDA에 신청해 놓은 상태다.

글락소웰컴은 이미 우울증 치료제 웰부트린을 지난 97년부터 자이반이란 금연약으로 다시 개발해 판매, 연간 1억5천1백만 달러의 추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몬산토는 관절염 치료제 셀레브렉스가 노인성치매와 대장암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임상 실험에 들어갔다. 또 아메리칸 홈 프로덕츠는 에스트로겐제제인 프레마린을 골다공증 치료제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에 앞서 독일의 바이엘은 해열진통제의 대명사로 통해온 아스피린에 혈액을 묽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는 데 착안, 용량을 3분의1로 줄인 '아스피린프로텍터' 를 심장병 예방약으로 판매해 인기를 끌고 있다.

제약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신약개발에 드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와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기존 약을 또다른 용도로 활용할 경우 임상 실험 이전까지 필요한 연구개발비 2천만~4천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는데다 개발기간도 3~5년 정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들에게 잘 알려진 약일 경우 홍보 비용까지 절감돼, 신약에 비해 적어도 5% 이상 이익을 더 낼 수 있다고 제약업체들은 말한다.

그러나 자칫 이런 약들이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이름만 다른 약을 신제품으로 내놓으면서 슬그머니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들은 뻔히 알면서도 속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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