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얼렁뚱땅' 생선값 무게·길이로 매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주부 전영순 (41.서울 상계동) 씨는 지난 주말 인근 슈퍼의 광고전단에서 명태 한코 (4마리)에 1천5백원씩 판다는 내용을 보고 매장에 들렀으나 크게 실망했다.

단골 생선가게에서 평소 사던 크기의 명태인 줄로만 알고 '싸다' 고 생각해 이곳을 찾았으나 씨알이 작았던 것. 이 슈퍼가 생선 크기를 구별하지 않고 '가격이 싸다' 는 내용만을 강조해 빚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 유통업체들이 명확한 기준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팔던 생선에 대해 무게.길이 등을 근거로 값을 매기는 '규격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공산품처럼 생선 값을 '과학적으로' 책정함으로써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보자는 것이다.

◇ 수산물 규격화 = 서울.부산.대전 등 전국에 55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유통은 1일부터 낙지. 고등어. 오징어. 명태.코다리 (반건조 명태).참굴비 등 6종류의 생선에 대해 '메뉴얼' 에 따른 판매에 들어갔다.

이 업체는 각 생선의 무게를 기준으로 3~6등급으로 나눠 소비자 값을 정한다. 예컨대 고등어의 경우 2백50g짜리 한 마리 8백원 (1일 기준) , 3백50g 이상 1천5백원, 5백g 이상 3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동안 재래시장 등에서는 상인들이 생선을 박스로 도매 구입한 후 한 두 마리씩 눈가늠으로 크기를 정해 팔아왔다.

한화유통 관계자는 "수산물은 오랜 상관행으로 인해 상인들이 부르는게 값" 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6개 품목 외에 갈치.넙치 등 다른 모든 생선으로 확대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롯데도 생선가격의 과학화를 위해 도미.대구.가자미 등 3개 고급어종에 한해 무게 단위 (1백g 기준) 로 판매한다. 롯데는 도미의 경우 제주산은 1백g당 2천원 (1일 현재) , 완도산은 2천5백원에 팔고 있다. 대구는 2천원,가자미는 1천5백원.

이 매장에 들른 주부 김유미 (36.서울홍제동) 씨는 "단골 가게가 아닌 시장이나 백화점 등에서 생선을 살 때는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으나 무게 단위로 값을 매겨 믿음이 간다" 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연근해산 굴비값을 크기별로 1㎝까지 세분화해 4부류로 나눠 판매하고 있다. 굴비 한 마리당 23㎝ 이상 2만1천원, 25㎝는 2만8천원에 팔고 있다. 이보다 2㎝ 더 큰 27㎝짜리는 1만원 더 비싼 3만8천원. 특품인 29㎝ 이상은 4만5천원이다.

이밖에 신세계.미도파백화점과 할인점인 E마트 등은 아직 생선을 세분화해 팔지는 않지만 대.중.소로 분류해 가격을 매기고 있다.

◇ '무게냐 크기냐' =규격화 기준을 놓고 업체별로 엇갈린 주장을 펴고 있다. 롯데.한화유통 등 주요 업체들은 생선은 머리.꼬리의 길이가 어종에 따라 모호하기 때문에 중량으로 규격화를 통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주장.

그러나 수산물 전문가들은 생선의 경우 쇠고기.돼지고기와 달리 단순히 무게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설명이다. 생선을 얼리면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 특히 굴비의 경우 1~2㎝ 차이가 무게 뿐만 아니라 맛.품질 면에서 크게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중량에 따라 값에 차이를 두되 일부에서는 정육제품과 마찬가지로 부위별로 규격화해 나눠 파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유통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생선은 공산품 등과 달리 똑같은 상품이라도 신선도에 따라 값 차이가 커지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규격화 판매가 정착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시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