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실업자 조직 '희망선언' 출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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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달 27일 오후 이화여대 중강당 신규여성실업자 '희망선언' 발대식장. '신규 여성실업자들이 정말 화가 날 때' 순위 발표가 한창이다.

'오백원이 필요해서 혹시나 하고 장롱 밑을 뒤질 때' , '지하철 걸인에게 줄 50원이 없어 실랑이 할 때' 등 순위가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1위는 '실업자 생활 일주일 만에 주부 습진 걸렸을 때'. 유례 없는 취업난 속에 새로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는 여성들의 취업률은 0%에 가까울 정도가 됐다.

이들 신규 여성실업자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나간다는 목표로 신규여성실업자 조직 '희망선언' 이 출범했다.

"취업을 못한 여성들 중 상당수가 정신적 공황을 겪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취업대란 속에서 신규로 노동시장에 나오는 여성들의 실업 문제는 상대적으로 도외시 되고 있어요. " 희망선언을 이끄는 최인선 (崔仁瑄.24) 씨의 변이다.

최씨는 ▶신규여성실업자들의 소모임 운동을 통해 정신적 고통을 함께 나누고 ▶정부의 실업대책을 여성의 시각으로 감시하고^여성 노동시장창출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희망선언의 목표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의 인턴사원제 등이 일부 기업들에 의해 '노동력 착취수단' 으로 악용되거나, 공공근로사업의 내용이 실제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등 정부 실업대책의 문제점도 밝힐 방침이다.

최씨는 97년 동덕여대 아동학과를 졸업했다.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 전에 졸업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좀 더 하고 취업하겠다' 는 생각에 취업의 고삐를 늦췄다.

당시만해도 언제든지 유치원이나 상담소 등에 취업할 수 있었기 때문. 그러나 예상치 못한 IMF사태는 최씨를 '장기 실업자' 로 만들었다.

2년을 넘어선 실업자 생활과, 각종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면서 최씨는 신규여성실업자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성민우회의 도움을 받아 '희망선언' 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불안감.고립감에 좌초하는 대신 실업자 문화 운동에 동참하고 정부의 여성취업 대책도 감시하는 등 '꿋꿋한' 실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최씨가 수많은 '동지' 들에게 보내는 전언이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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