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투 매각협상 결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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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예금보험공사와 영국계 PCA 컨소시엄의 대한투자증권 매각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따라 대투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동시에 민영화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예보는 16일 "우선협상대상자인 PCA 컨소시엄과 대투증권 매각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협상을 종료하기로 했다"며 "예비협상대상자인 하나은행 컨소시엄과 매각협상을 새로 벌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협상 결렬은 추가부실 가능성이 있는 자산에 대해 정부가 어느 범위까지 손실을 보전해줄 것인지를 놓고 양측의 견해 차이가 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PCA는 제일은행 매각 때처럼 포괄적인 사후손실보전(풋백옵션)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공적자금 추가투입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이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금융계는 대투증권의 자산 중 대우채가 포함된 증권담보부유동화채권(CBO)펀드 등 1조2000억원가량이 앞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이 큰 우발채무로 보고 있다.

사후 손실보전 문제는 앞으로 진행될 하나은행과의 협상에도 큰 걸림돌이다.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은 "대투 인수에 참여할 의사는 있지만 당초 제시한 조건들을 정부가 수용해야 본격적인 실사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사후 손실보전을 분명히 약속하거나 적어도 이를 반영해 매각 가격을 대폭 낮춰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행장은 "사후 손실보전 문제를 PCA가 양보할 수 없었다면 우리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정부로서는 하나은행의 요구를 들어주기 힘든 상황이다. 헐값 매각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환위기 직후부터 금융권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꼽혀온 대투증권과 한투증권 매각을 더 이상 미루기도 어렵다. 하나은행과의 협상이 길어지면 연내에 모든 매각을 마무리한다는 정부의 계획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매각이 지연되면 가격조건도 나빠질 공산이 크다.

금융계 관계자는 "하나은행과의 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공동 매물인 한투증권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충분히 예견이 가능한 사후 손실보전 문제를 놓고 사전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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