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72.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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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8장 도둑 ④

일행들이 간고등어 장사에 매달려 있는 동안 태호는 한가하게 장거리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갯벌 생산물들의 매기를 눈여겨보기 위해서였다.

장터를 배회하면서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고막.새고막.낙지.주꾸미.맛조개.바지락.굴.개불들의 매기가 지나쳐볼 것이 아니었다. 오징어가 장꾼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면, 갯벌에 기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산물로 매물을 바꿔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토박이 상인도 아닌 처지에 갯벌은 어디에 있고, 어떤 경로로 시장까지 쏟아져 나오는 것인지 태호로서는 전혀 숙맥일 수밖에 없었다. 시장 고샅길을 배회하는 중에 약국 옆에서 용달차를 세우고 고막을 팔고 있는 한 식구의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용달 트럭 적재함에는 바지락 포대가 쌓여 있었고, 길바닥에는 풍로를 내놓고 구워 가면서 오가는 장꾼들에게 맛을 보이고 있었다. 일찍이 한씨네 행중들이 강원도 시장을 돌 때 구사했던 방법이었다.

그들의 구성원은 모두 세 사람이었는데, 나누는 대화로 보아 젊은 내외와 시누이로 보이는 세 사람이었다. 고막을 어디서 떼오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사내가 힐끗 태호의 행색을 살폈다.

"고막 장사 해볼라고?" "궁합이 맞으면 한번 해볼 작정입니다. " "좋긴 좋은디 어디서 왔지라?" "강원도에서 왔어요. " "여그도 고상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요새 강원도 포구는 거덜이 났다는디?"

"그렇습니다. " "나가 이 장사를 한 지도 며칠 안되아서 잘 모르요만 담배 한 대 줄라요?" 두 사람은 약국 출입문을 비켜 유리창 아래 쭈그리고 앉았다.

"나가 팔고 있는 바지락은 고창에 있는 곰소만 갯벌에서 가져온 것인디. 굉장히 크지. 가근방에는 그만한 갯벌이 없지라. 옛날에는 그 갯벌에서 팔뚝만한 숭어가 뛰고 뻘을 손가락으로 깔짝거려도 낙지가 꿈틀했지라. 그러나 그 건 옛말이랑게. 요새는 갯벌도 깊어지고 썩은 냄새가 나. 갯골길 (갯벌에 드나드는 길나들이) 도 없어져뿌렀어.

아지매들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뻘을 다섯 시간, 여섯 시간씩 허우적대다가 집에 돌아오면, 소출은 없어도 인대가 늘어나 똥끝까지 우려서 밤새 숱한 고생들 하지라. 근데도 어떻게 혀. 갯벌이 텃밭인디. 인대가 늘어나도 식은 방귀는 뀌지 않았으니 눈 비비고 또 뻘로 나가야지.

그 고상스러운 것을 알아야 고막장사든, 바지락장사를 할 자격이 있제. 낙지하고 주꾸미도 분간 못하는 놈이 주꾸미를 낙지로 팔더라고, 뭘 알고 장사를 해야제. 형씨는 바지락하고 고막도 분간 못하는 숙맥 같은디 바지락 팔아서 잇속을 넘본다는 게 가당찮은 일 아닌가 모르것네?"

"잇속부터 차리자는 게 아닙니다. 장사할 거리를 찾자는 것이지요. " "그 말이 그 말인디. 꼭 하고 싶거든 장거리를 헤매고 있지 말고 곰소만 갯벌에 가서 딱 열, 열흘만 뻘에 대가리 처박고 낙지를 파든지 고막을 파 봐. 아지매들 고상스러운 것을 알아야 장사도 잘하는 법이여. 내 말 알아들었지라?" "형님도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 보았습니까?"

"시방 나보고 바지락 캐 보았냐고 물었지라? 참말로 우스운 소리 듣겠네 잉! 나가 바로 고흥군 남양만 여자만 출신이랑게. 태자리가 거그여. 우리 막걸리 한잔 하까?" 사내 먼저 담배를 비벼 끄고 벌떡 일어섰다.

손이 모자라 쩔쩔매고 있던 아내가 적재함 위에서 어디로 가느냐고 소리를 질러 댔지만, 사내는 본척만척하고 태호의 허리춤을 잡아끌었다. 선술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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