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의 진화 … 보이스 줄고 메신저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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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 공무원 임모(36)씨는 지난 4월 메신저 대화창을 통해 형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후배와 출장 중 술에 취해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후배 계좌로 200만원만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임씨는 인터넷 뱅킹을 통해 형이 알려준 계좌로 200만원을 송금했다. 임씨가 입금 확인을 위해 형에게 전화를 하자 형은 “출장을 가지 않았고 지갑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임씨는 형의 메신저에 등록된 지인 중 3명이 똑같은 방법으로 형을 사칭한 사람에게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 지난 8월 대구의 이모(40·여)씨는 친구로부터 “부탁한 돈을 부쳤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친구에게 돈을 부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친구는 “방금 전 메신저를 통해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 150만원을 부쳐 주면 내일 바로 갚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씨에게 되물었다. 누군가 이씨의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 접속한 뒤 친구에게 돈을 부탁한 것이었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친구나 가족인 것처럼 접근해 돈을 요구하는 ‘메신저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6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7월 메신저피싱 피해 신고 건수는 697건이다. 상반기 월평균(232건)의 세 배다. 1월 109건에서 소폭의 증가세를 보이다 5월 이후 급증한 것이다. 메신저피싱의 상반기 피해 금액은 26억9700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보이스피싱 피해신고는 1월 420건, 2월 953건, 3월 1068건으로 증가하다가 4월 850건, 5월 654건, 6월 705건으로 줄어들었다. 7월에는 메신저피싱 피해의 절반 수준인 386건으로 급감했다.

메신저피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보이스피싱보다 피해자를 속이기 쉽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메신저피싱 용의자들은 주로 해킹을 통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보한다. 메신저의 특성상 한 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확보해도 등록돼 있는 친구나 가족 수십 명과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무작위로 전화를 하는 보이스피싱보다 피해자가 속기 쉽다. 송금도 현금인출기를 통하는 보이스피싱과는 달리 폰뱅킹으로 신속히 이뤄진다.

메신저피싱 피해가 증가함에 따라 경찰은 9월을 메신저피싱 특별단속기간으로 정하고 업계와 대책을 마련 중이다. 메신저 대화창에 ‘인증서’ ‘카드’ 등 단어가 입력되면 주의 메시지가 자동으로 뜨도록 하거나 메신저 이용자가 외국에서 접속했을 때 지역을 표시토록 하는 등의 방안이 검토하고 있다.

메신저 본인인증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업체 측과 논의 중이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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