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초 눈길을 잡아라' 영화포스터 튀는 마술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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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거리의 게시판과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팝아트' '0.3초의 예술 - .' 영화 포스터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 수집품목으로 떠오르고 카페의 필수 장식품이 될 만큼 부쩍 관심을 끌고 있다.

좋은 포스터는 흥행성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이 말은 '흥행성공작 포스터는 오래 기억된다' 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찰나의 순간 눈길을 잡아끌어 관객을 유인하는 광고 본연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스터 하면 단순히 영화 스틸을 인쇄한 것으로 인식하던 때도 있었지만, 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양과 질 모두 부쩍 성장하면서 이젠 크랭크인부터 촬영현장을 누비며 사진과 디자인.카피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정도로 전략적이 됐다.

충무로에서 영화 포스터를 다루는 '예술가' 는 손에 꼽힐 정도. 이 바닥이 워낙 알음알이로 일을 시작하고, 한번 인연을 맺으면 외부인력에겐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황림 감독의 '애란' 으로 데뷔, 10년동안 영화 포스터 사진만 전문으로 찍어온 송기철 (37) 씨가 '롱런' 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그가 설명하는 우리 영화 포스터의 변화상은 뭘까. "과거엔 주연배우 얼굴과 이름을 짜깁기해 부각시키는 구도가 주였다. 이제는 '현장성' 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사에서 실감나는 사진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

'조용한 가족'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정사' 등으로 '신세대 디자이너' 로 부상하고 있는 김상만 (29) 씨. "포스터는 사진가의 것도, 디자이너의 것도 아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제작 전부터 마케팅팀과 사진가.디자이너가 함께 전략을 짠다. " 당연히 시나리오를 읽는 것은 필수다. 카피와 로고는 주로 마케팅 팀에서 만든다.

그리고 카피를 염두에 두면서 찍어온 사진과 카피.로고 등을 트리밍하고 배치하는 '제 2의 창작' 과정을 거친다.

'조용한 가족' 은 현역 사진작가인 오형근 (36) 씨가 찍었는데, " '코믹잔혹극' 이라는 타이틀을 살리고, 뚜렷한 스타가 없으니 배우 얼굴을 강조하지 말자" 고 서로 협의했다.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는 것은 오씨의 아이디어. 여기에 가족사진 느낌을 주기 위해 김씨가 금빛 액자를 둘렀다. 김씨가 김승우.진희경 등 배우들의 얼굴을 찍은 후 컴퓨터그래픽으로 마스크만 오려 군데군데 걸어놓은 '신장개업' (미개봉) 은 '너 오늘 잘 걸렸다~!' 는 카피와 디자인이 기발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다.

오씨처럼 현역 사진작가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구본창 (46) 씨는 86년 '기쁜 우리 젊은 날' 을 시작으로 '태백산맥' '서편제' '축제' 등 '태흥 사진만 하는 사람' 으로 통한다.

'아줌마' 사진으로 유명한 오씨 역시 본업은 사진이지만 오하이오 대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는 등 시나리오와 연출에 관심이 많다. '꽃잎' '영원한 제국' 등 인물을 강조한 사진이 특기. 예술성을 염두에 둘수록 갈등도 많다.

"찍은 사진을 그대로 써달라고 부탁해도 관객 동원 등을 고려해 디자인 과정에서 변형될 때가 있다" 는 고충을 토로한다. 예술성이 있어야 하면서도 가장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딜레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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