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워크아웃 중도탈락 은행·기업 공동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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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들어 워크아웃의 진행 과정을 놓고 논란이 많다. 경기화학에 이어 아남전자까지 워크아웃에서 탈락하자 예전의 통일그룹 사례까지 들먹이며 워크아웃의 실패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한번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은 절대 무너져서는 안되는가. 그렇지 않다. 현재 중단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이다.

첫째는 대주주나 기업주의 경영권 집착과 소극적인 손실부담 의지로 채무조정이 덜 된 기업이다. 채권단도 졸속으로 타협해준 경우로 작은 경기변동에도 무너질 공산이 크다.

둘째는 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부실채권을 떠안는 게 두려워 채권단이 대충 덮어놓은 경우다. 여기엔 실사기관의 낙관적인 추정도 한몫 거들었다. 채권단이 상당한 신규자금까지 쏟아부었지만 기대대로 호황국면이 오지 않으면 되레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결과만 낳을 게 뻔하다.

셋째는 좀 더 일반적인 상황. 채권금융기관들의 소소한 이해관계로 약정체결이 지체되는 경우다. 그 사이에 기업은 급전을 쓰며 연명한 결과, 만성적인 자금부족으로 중병이 들어있기 십상이다. 이런 기업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워크아웃 부적격으로 처리될 수 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워크아웃의 실패' 라고 놀랄 것인가.

워크아웃의 성공은 몇 개의 기업이 탈락하느냐는 숫자에 달려있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워크아웃이 우리 경제시스템 내에서 기업의 '갱생제도' 로 정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기업에 대한 엄격한 사후관리다. 이 과정에서 수준 미달 기업이 탈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는 엄격한 사후관리와 이해관계자간 책임추궁이 집요해질 것이다. 경영관리단과 워크아웃팀, 실사기관과 경영진간에 책임소재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이렇게 해서 실패가 거듭되면 서로 피해를 보지않기 위해 보다 정교한 장치가 자연스레 마련될 것이다.

현재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 협약이라는 틀과 기업구조조정위원회라는 외부 중재기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협약과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한시적인 장치다. 언제까지 이런 장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워크아웃이 채권단의 자율 협의제도로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채권단의 피동적이고 책임전가 일색인 요즘 태도로 보아 이는 기대로만 그칠 공산이 크다.

워크아웃이 채권단들의 자율절차로 정착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부실채권의 정리비용만 수업료로 낭비하고 앞으로 수십년을 활용해야 할 기업갱생제도를 내다버리고 마는 꼴이 된다. 또 채권금융기관뿐 아니라 기업들도 손해를 보게 된다.

이에 따라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기능을 분리해 자율적 중재기능은 채권단에 돌려주고, 사후관리는 감독기구로 흡수시켜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워크아웃 절차를 포기하면 우리에게는 정상기업이냐, 아니면 법정관리나 청산이냐 하는 양극단의 선택만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성규 <기업구조조정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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