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탄 지원에 "땔나무 안해도 되겠네"

중앙일보

입력

"정말 번개같이 불이 붙는구만요. 잘못 다루다간 세간살이가 몽창(몽땅) 날아가 버리겠습네다."

▶ 북한 주민 천영애씨(左)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남측 민간단체 새천년생명운동의 김흥중 이사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사용 번개탄을 이용한 화덕에 계란을 부치고 있다. 고성 양지마을=이영종 기자

지난 13일 오전 북한 측 땅인 강원도 고성군 양지마을 주민 천영애(47)씨는 번개탄(착화탄)이 순식간에 활활 타자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야자수를 압착해 만든 이 번개탄은 남한의 대북지원 단체인 '새천년생명운동'의 김흥중 이사장이 북한 주민의 취사를 돕기 위해 가져간 것으로 천씨 집에서 화력 실험을 했다.

*** "안 눌어붙는 프라이팬 있다니"

북측은 김 이사장 등과 동행한 중앙일보 기자에게 북한 가정을 취재하는 것을 허용했다. 북한이 남측 기자에게 북한 주민 집을 방문해 그들이 사는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을 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고성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2006년까지 5만가구분의 보일러 지원 등을 추진 중인 새천년생명운동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천씨는 이날 남측 인사들을 반갑게 맞았다. 김 이사장 등이 번개탄의 성능을 설명하며 "계란 요리라도 해봅시다"라고 하자 그는 부엌으로 달려가 계란 몇개를 가져왔다. 그러고선 남측이 선물한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려 했다. 그런 그에게 "이것은 특수 처리된 프라이팬이라 기름이 없어도 계란이 눌어붙지 않는다"고 하자 천씨는 "그런 것도 있습네까"라고 했다.

번개탄이 타면서 냄비에 올린 물이 5분도 지나지 않아 펄펄 끓기 시작하자 천씨는 계란 반숙을 해보겠다며 계란 다섯개를 넣었다. 금세 반숙이 되자 이번엔 "감자를 쪄 손님들에게 대접하겠습네다"라며 감자를 집어넣었다.

그런 그에게 기자가 소감을 묻자 그는 "음식이 너무 빨리 익어 맛있고 쓰기에도 아주 편리할 것 같습네다"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북측 관계자도 "산에 올라가 나무를 끊어다 때왔는데 이젠 그런 일이 없어질 것 같습네다"라고 했다.

새천년생명운동 측은 지난 6월 천씨집 부엌에 시범 설치한 연탄보일러도 살펴봤다. "남한에서 새마을보일러로 불리는 것"이란 설명에 천씨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측의 보일러 기술자는 "지금은 불을 때지 않지만 (보일러를) 시험해 봤더니 방바닥이 절절 끓었습네다"라고 말했다.

번개탄 시험 도중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자 천씨는 남측 손님들을 안방으로 안내했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린 방이었다. 천씨는 돼지고기 구이와 삶은 감자.옥수수 등을 내왔다. 기자를 포함한 남측 손님 4명과 북측 관계자 3명에게 점심 대접을 한 것이다.

*** 작별 선물로 삶은 옥수수

기자가 "마침 오늘이 생일"이라고 하자 천씨는 개성인삼주와 복숭아를 가져왔다. 그러고선 군복 차림의 아들 사진을 내보이며 "지난해 장군님이 계시는 평양으로 배치받았습네다"라고 했다. 그의 얼굴에선 자랑스럽다는 표정이 느껴졌다. 이윽고 남측 손님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자 천씨는 삶은 옥수수를 싸주면서 "너무 고맙습네다"라고 했다.

새천년생명운동 측은 이날 양지마을에선 다소 떨어진 고성읍 온정리에서 대북 지원 물자 전달식을 했다. 취사용 화덕 200개와 번개탄 3만개를 비롯, 5550만원 어치의 물품을 전달한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북한 관계자는 "사람에게 쌀과 탄이 있으면 기본이 되는데 어떤 때는 탄이 더 귀한 것 같습네다"라고 말했다.

고성 양지마을=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