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 타결] '금창리 핵의혹 조사' 합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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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금창리 핵의혹 시설에 대한 북.미 합의는 관계개선을 약속했던 양국간 기존 합의사항을 유지키로 한 점에 기본적인 의의가 있다.

양국은 93년 6월 뉴욕 합의와 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은 핵개발을 중지하고 미국은 대북 위협정책을 포기하는 등 관계개선에 합의했었다.

금창리 관련 협상은 이같은 기본합의의 존속 여부를 판가름하는 관건이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양국관계는 다시 대결국면으로 들어설 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기존 합의를 재확인함으로써 양국은 공존관계로 들어서게 됐다.

특히 한때 나돌았던 '한반도 3월 위기설' 은 일단 수그러지게 됐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북한 핵문제가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다.

금창리 '핵의혹' 이 '규명가능' 으로 전환됐을 뿐이다.

규명과정에서 북한이 사찰에 협조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군사시설이라는 등의 또다른 구실을 내세워 사찰에 제한을 가한다면 불씨가 재연될 게 뻔하다.

이런 점에서 합의문에 '사찰 (inspection)' 이 아닌 '접근 (access)' 으로 돼있어 마음에 걸린다.

또 사찰결과 핵시설로 판명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때문에 이번 합의는 북한 핵문제 해결의 출발일 뿐 넘어야 할 산은 첩첩인 셈이다.

그래도 이번 협상은 양국이 각기 얻을 것을 챙긴 '윈 - 윈 상황' 으로 평가된다.

비록 공표는 되지 않았지만 북한은 식량 확보.경제제재 추가 완화.동결자산 해제 등 지난해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 이전에 미측이 이미 검토했던 사항들에 대한 실천을 약속받았다.

식량지원 액수는 내년 5월까지 모두 60만~90만t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핵의혹을 해소시킬 경우 미국으로부터 감자생산을 위한 영농기술을 전수받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미국이 단순한 식량지원을 넘어 농업개발까지 지원하겠다는 의사표시기 때문이다.

미국도 나름대로 소득을 얻었다.

우선 금창리 핵의혹 시설에 대해 '무제한적 접근권' 을 확보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 (IAEA) 아닌 미국측 전문요원들이 직접 북한내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북.미 기본합의에 따라 2003년께로 예정된 경수로 주요 부품공급 이전에 IAEA의 전면 사찰에 북측이 합의한 만큼 그 이전 시점에 미국 단독사찰이 이뤄진다는 것은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수확은 북.미 기본합의의 파기 가능성을 일단 차단함으로써 클린턴 대외정책이 미국 국내정치의 볼모가 될 소지를 봉쇄하고 나아가 페리보고서를 미 의회에 설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번 합의가 예정대로 지켜지면 양국은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등 본격적인 관계개선의 길로 나가고, 이는 한반도 평화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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