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佛 신지식인의 '북한선언문' 성안한 리굴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아르고스의 왕 다나오스의 딸 49명은 모두 남편들을 죽였다.

그 죄로 딸들은 지옥에서 밑이 없는 통에 물을 붓는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이데스의 통' 얘기다.

"국제사회의 북한 지원이 바로 다나이데스의 통 (tonneau de Danaides) 과 똑같습니다. "

프랑스 지식인들의 '북한 선언문' 을 성안 (成案) 한 피에르 리굴로 (55.파리10대학 부설 사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는 유엔과 각국이 열심히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작 굶주린 주민에게 식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 학계.언론계.사상계를 대표하는 지식인 20명은 지난 10일 북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효과적 식량배분을 통제할 수 있는 국제적 감시체제를 만들어 대북 (對北) 지원이 하루빨리 '다나이데스의 통' 신세를 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이 중앙집권적 통제경제 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식량난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프랑스 좌.우파를 망라한 20명의 지식인들은 선언문에서 북한 주민들의 참상은 지식인으로서 더이상 무관심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선언문에 서명한 지식인에는 철학자 앙드레 그뤽스만.알랭 핀키엘크로, 역사학자로 이름높은 에마뉘엘 르 로이 라뒤리, 언론인 겸 작가 올리비에 토드, 중국학자 장 뤽 도므나크, 한국학자 다니엘 부셰 등이 포함돼 있다.

리굴로는 아시아 공산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지금은 북한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에밀 졸라나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인물' 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식인의 역할과 책임은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고 봅니다. " 진실을 통해 시대를 선도하는 프랑스 지식인의 '앙가주망 (현실참여)' 전통은 지금도 살아숨쉬고 있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