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인터넷시대의 무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을 수십년간 학문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가 있다.

그가 무속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소설처럼 드라마틱하다.

그의 어머니는 열한살에 시집 와서 열아홉살에 첫 아이를 낳기 시작해 마흔한살에 막내인 그를 낳기까지 무려 열한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딸 하나와 막내아들만 살아남았을 뿐 다른 아홉 남매는 모두 어려서 죽었다.

자식을 잃을 때마다 너무 많이 울어 눈병을 얻기도 한 어머니는 툭하면 굿판을 벌였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무속에 관심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이 학자의 어머니가 무속신앙에 관심을 갖는 우리 민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불행한 일을 당했거나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려는 것이 우리 무속신앙의 바탕을 이뤄온 것이다.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무당내력 (巫堂來歷)' 이란 책에 따르면 무당은 단군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태초에 시월 삼일 신인 (神人) 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와서 신교 (神敎) 를 만들어 이를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를 시조 단군이라고 한다…. 매년 시월이 되면 신곡 (新穀) 을 시루에 쪄서 떡을 만들어 제주 (祭酒) 나 과일과 함께 바쳐 제를 지냈다. 이럴 때는 세상에서 흔히 '무녀' 라 불리는 노파로 하여금 지내게 하였다. 후에 그러한 무녀의 수가 늘게 되어 이를 '무당 (巫堂)' 이라 일컫게 되었다. "

여기에서도 보여지듯 무당은 만사형통을 비는 의식 (儀式) 의 주역일 뿐 미래를 예언하는 점쟁이와는 그 근본이 사뭇 다르다.

그래서 대개의 무당들은 점쟁이들을 경멸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이르러 점쟁이의 역할까지 겸하는 무당들이 속속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70년대 새마을운동의 시작과 함께 퇴조기에 접어든 무속신앙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풀이다.

점쟁이들에게는 새로운 강적이 나타난 셈이다.

무속신앙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최근 인터넷의 '홈페이지 만들기' 방식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중앙일보 3월9일자 23면) .지난 96년 '인터넷 부채도사' 홈페이지가 첫선을 보인 뒤 최근 1년새 인터넷에 등록된 무속인들의 홈페이지는 10여곳에 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 만능시대라지만 '굿판' 이라는 의식을 본질로 삼는 무속신앙과 컴퓨터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데 이런 현상이 미신을 조장하지는 않을는지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