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빠진 첫 국제대회, 한국 바둑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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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삼성화재배 14년 역사는 한국바둑 승리의 역사다. 1996년 첫 해엔 일본의 요다가 우승해 일본바둑의 잔영이 아직 남아있는 듯 보였으나 곧바로 무적의 이창호 9단이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이 세계바둑의 패권국임을 알렸다. 이창호가 중도에 탈락하면 ‘늙은 호랑이’ 조훈현 9단이 식을 줄 모르는 투혼으로 우승컵을 지켜냈다. 바로 이 삼성화재배를 통해 중국의 일인자 마샤오춘 9단과 창하오 9단이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차례로 무대 뒤로 사라져갔다. 한·중 대결은 한국의 완승이었고 일본은 쇠락했다. 일본 대표로 나선 노장 조치훈 9단이 2003년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역시 국적은 한국이었 다. <표 참조>


그러나 2005년을 고비로 판도가 일변하며 중국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 첫 장은 의외로 2류로 생각돼온 뤄시허 9단이 장식했다. 해를 넘겨 치러진 결승전에서 뤄시허는 이창호를 2대 1로 꺾고 중국에 첫 우승컵을 선사한다. 대회가 시작된 지 꼭 10년 만이었다. 중국은 2007년 ‘돌아온 창하오’가 이창호를 2대 0으로 완파하며 또 한번의 기적을 연출해낸다. 이창호의 무적 파워는 한 풀 꺾이며 바둑판 361로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황사바람을 잠재운 기사는 바로 이세돌 9단이다. 그는 지난 2년간 연속 우승컵을 따내며 한국바둑의 건재를 알렸다. 하지만 이번 대회 한국 선수 명단엔 전기 우승자 ‘이세돌’이란 이름은 없다. 그는 ‘휴직 중’이며 이에 따라 공식대회 출전은 금지되고 있다. 한국은 장기로 치면 차(車)를 뗀 상황에서 중국과 일전을 치러야 한다.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은 9일의 전야제에 이어 10일부터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개막된다. 10~12일 사흘간 32강전을 치르고 그 후 12월에 열리는 결승전까지 3개월의 장정이다. 중국은 랭킹 1위 구리 9단을 필두로 창하오·천야오예·쿵제·저우루이양 등 신구가 망라된 13명의 정예를 총동원하여 전면전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도 이창호·강동윤·박영훈·최철한 등 주력 부대와 김지석·박정환·홍성지 등 신예 강자들까지 15명의 정예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15명 중엔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조훈현 9단도 있다.) 이세돌이 빠진 상태에서 치러지는 첫 국제대회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만약 한국의 완패로 끝난다면 이세돌 문제를 가만히 덮어두고 있는 한국기원 쪽에 의외의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예선전에서 전멸했으나 현 기성인 야마시타 게이고 등 3명이 시드를 받아 본선 32강전에 출전했고 대만도 최강자 저우쥔쉰이 본선에 직행했다. 우승 상금은 2억 5000만원.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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