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컬처코드 (26) 소통과 포용, 선덕여왕에서 보는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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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MBC ‘선덕여왕(사진)’이 시청률 40%대를 돌파하며 연일 인기 고공행진이다. 천명공주(박예진)의 죽음과 덕만(이요원)의 복귀로 미실(고현정)과의 대립구도가 선명해지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속도감 넘치는 진행에 풍부한 현실 비유, 배우들의 열연이 화제다. 천의 연기력을 발휘한 고현정을 비롯해 비담 역의 김남길, 정웅인·전노민 등이 탄탄한 연기호흡을 과시한다. 여세를 몰아 10월에는 일본 후지TV 방영도 예정돼 있다.

#최근 TV드라마의 한 경향은 ‘여성과 정치’다. 남편의 직장 내 지위에 따라 서열을 형성하는 부인들을 그린 MBC ‘내조의 여왕’은 ‘의학정치드라마’인 ‘하얀거탑’의 아줌마 버전이라 할만했다. KBS ‘천추태후’는 여걸 사극의 문을 열었다. 김혜수의 엣지(각 있는) 스타일로 화제인 SBS ‘스타일’도 잡지사와 패션업계의 막후세계를 그린다. ‘남성=정치, 여성=비정치’라는 도식을 벗어난 것이다. 직업세계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권력관계에 따른 정치적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 시청자의 공감이 컸다. 정치를 떠난 삶은 없다는 인식에 더하여, 여성의 정치적 욕망 드러내기에도 환호했다.

‘선덕여왕’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단순히 정치적 주체로서 여성을 그릴 뿐 아니라 대안적 리더십, 여성주의적 리더십을 제시하는 것이다. 김영현 작가는 이미 ‘대장금’에서 장금과 스승 한상궁의 관계를 통해 ‘소통과 포용의 여성주의적 리더십과 연대’를 보여준 바 있다.

#시청자 사이에는 이번 주 방송에서 덕만과 미실이 벌인 ‘6분토론’이 화제다. ‘100분토론’ 못잖은 정치학 교과서라는 평도 나왔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미실에, ‘희망’이라는 덕만이 맞섰다. 미실은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우리는 적이지만, 횡으로 나누면 같은 지배자”라고 말하고, 덕만은 “신권(권력)을 미실에게서 빼앗아올 수 있지만 그렇다면 곧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되찾으려 해야 할 것”이라며 “그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신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미실이 노회한 현실정치라면 덕만은 이상주의적 개혁정치를 상징한다. 물론 ‘선덕여왕’은 여기에 단순한 선악 이분법을 들이대지 않는다. ‘백성의 희망’을 꿈처럼 얘기하는 덕만에게 미실은 “백성이 희망을 원한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환상”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최측근에게마저 진의를 드러내지 않고 정치 책략에 동원하는 것은 덕만도 예외가 아니다. 시청자 또한 순수한 덕만 못지 않게 욕망에 충실한 미실의 솔직함에 매료된다. 정치적으로는 상대가 죽어야 사는 관계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이번 주 드라마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소통’에 대한 덕만의 대사였다. 배제와 공포에 의한 남성적 리더십에 맞서는, 포용과 상호이해에 의한 여성주의적 리더십의 실체를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했다.

“미실은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아. 오히려 백성을 두려워하지. 그래서 백성의 말을 듣는 것도 두려워하는 거야. 그러나 난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나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말들이, 질문들이 나를 결정할 거야. (…) 앞으로도 백성은, 세상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할 꺼야. 난 언제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질문들을 들을 거고 최선을 다해서 답을 찾을 거야.”

소통을 얘기하면서도 듣지 않거나, 듣고 싶은 얘기만 골라 듣는 이 땅의 많은 정치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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