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나누는 삶 일깨운 러시아 무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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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에서 무용수 생활을 한 지 10개월. 워커힐쇼 계약기간이 끝난 아리따운 무용수 코파지나 알리샤 (19.여.벨로루시) 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리며 3일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해 5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은 모든 게 낯설던 나라. 그러나 떠나는 그녀에게 한국은 이제 이국적인 음식 맛과 정 많은 친구들을 선사해준 추억깊은 나라다.

무엇보다 동료 27명과 함께 지난달 14~15일 출연료 3백만원을 모아 광진구청으로부터 소개받은 한국인 실직자 26명에게 전달한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울 만큼 기억에 남는 일.

알리샤가 낯선 땅의 실직자들을 애틋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수년전 그녀가 맛보았던 좌절감이라는 '유대의식' 을 한국의 실직자들에게서도 느꼈기 때문이다.

94년 세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리듬체조 금메달,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단체전 동메달을 땄을 만큼 유망한 체조선수였던 그녀도 18세때 코치로부터 "이젠 은퇴할 나이가 됐다" 는 '사망선고' 를 들었다.

고민끝에 고국의 민스크대에서 체육학을 공부하다 요행히 워커힐쇼 무용수 자리를 구해 예전보다 많은 수입을 올리게 되긴 했지만 한국의 실직자들을 볼 때마다 어려웠던 옛 시절이 떠올랐다.

"러시아에 비하면 한국은 그다지 혼란스런 상황이 아니에요.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희망이 생기지 않겠어요. "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는 알리샤. 그녀의 마지막 말에도 한국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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