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회의 지상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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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6일 열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회의' 에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 정치구조와 경제발전이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이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라는 주제로 특강을 맡은 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 교수 (케임브리지대) 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각기 제대로 활용된다면 사회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 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학술세미나 주제발표에 나선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 (조지 메이슨대) 는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는 단순논리엔 무리가 있으나 일본의 종신고용제.한국의 재벌 등 아시아 특유의 경제제도들이 이제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 이라며 변화를 촉구했다.

장하성 (張夏成.고려대) 교수 역시 주제발표를 통해 경제발전을 지속시키기 위한 개혁 활성화를 주장했다.

다음은 이날 특강 및 주제발표 내용 요약.

◇ 센 교수 특강 = 민주주의는 사회.경제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다.

시장경제 역시 생산성 향상.효율성 증대를 통해 사회발전에 공헌해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양자는 사회발전을 위한 기계적 도구만은 아니다.

사회적 가치와 규범, 사회 구성원들의 정의에 대한 인식에 따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

과거에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려없이 그 자체로만 활용됐다가 많은 문제를 빚은 적이 있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인 합의과정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현재 맞닥뜨린 숙제다.

◇ 아시아 경제위기로 본 아시아적 가치 (후쿠야마 교수) =아시아 위기의 주범은 아시아 특유의 정경유착적인 자본주의 (cronycapitalism) 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의 경제위기는 과거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경제시스템이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논리를 펼쳐온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독재정권의 정통성을 약화시켰다.

반면 한국은 위기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다양한 이익집단이 의견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서 정치적 제도의 정통성에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또한 강력한 노조나 학생운동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아시아 지역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처럼 한국의 이익집단들이 민주적인 정치 메커니즘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한국의 정치제도는 유럽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 기업지배구조와 경제발전 (장하성 교수) =외자 (外資) 유출만이 경제위기의 주범은 아니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 특히 재벌은 부 (富) 와 정치권력을 동시에 향유하면서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원인발생에 막대한 책임이 있다.

앞으론 재벌의 막강한 권력으로부터 일반시민, 특히 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시장질서가 정착돼야만 건실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신정부 출범 이래 한국은 금융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많은 조치를 취했으나 법 개정이나 규제만으론 부족하다.

국민 각자가 자기권리를 찾기 위해 정당한 권리행사를 해야만 한다.

또한 정부는 재벌개혁을 단행하면서 단기간에 부작용이나 역효과가 나타나더라도 감수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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