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의 행복한 책읽기] 앙리 마스페로 '도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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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앙리 마스페로의 '도교' 는 서양인이 저술한 중국학 서적 가운데서도 단연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뒤늦긴 했지만 이 책이 우리말로 옮겨진 것은 전공자에게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뜻깊은 일로 여겨진다.

저자 앙리 마스페로는 금세기 초반 프랑스의 중국학 연구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시절 베트남과 중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관련분야를 탐구했고 1920년부터는 콜레쥬 드 프랑스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의 문화와 종교.역사.신화 전반에 걸쳐 풍부한 연구 성과를 내놓은바 있다.

하지만 그는 레지스탕스운동에 가담한 아들 때문에 나치에 체포돼 1945년 파리 해방 직전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번에 번역된 '도교' 는 그의 사후 출판된 전3권의 유고집 가운데 제1권과 제2권을 옮긴 것이다.

따라서 책 제목과 달리 그 내용이 도교에 한정돼 있지 않고 민간신앙이나 불교의 전래 과정, 또는 베트남의 소수민족인 따이족의 사회와 종교, 시인 혜강과 죽림칠현같은 다양한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객관적인 시각과 광범위한 자료 섭렵,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로 차분히 중국 문화의 심층을 더듬어나가는 저자의 태도는 오랜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이 책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있는 부분은 중국인들의 민간신앙을 다룬 부분.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숱한 신들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로 훌륭한 동아시아적 상상세계의 지형도가 되어주고 있다.

이 만신전에는 최고신 옥황상제나 저승을 다스리는 염라대왕, 달의 여신 항아, 그리고 뇌공.우사.풍백.용왕 같은 익숙한 이름도 더러 눈에 띄지만 그 기발함에 잠시 책장을 넘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신도 등장한다.

예컨대 하늘을 청소하는 노파인 소청랑은 비온 뒤에 빗자루로 구름을 쓸어내고 하늘을 청소하는 일을 맡고 있는 신이며, 팔사대왕은 메뚜기떼에 시달린 농민들이 숭배한 신으로 인간의 얼굴에 새의 부리를 하고 있다.

직업별로 믿는 신이 세분화돼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무관들이 수호신으로 관우를 섬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장비가 푸주한의 수호신이고 반금련이 창녀의 수호자였다는 것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이처럼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연구의 중심에 놓는 저자의 관점은 도교를 다룬 부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노자나 장자의 형이상학적 가르침이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속화되고 타락해가는 과정으로 도교의 역사를 보는 일반적 시각에 거리를 둔다.

금세기 초엽 벽안의 학자에 의해 이루어진, 중국 문화에 대한 이 선구적인 접근과 해석이 뒤늦게나마 이 땅에 상륙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남진우 <문학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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