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화재배 우승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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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우승 소감은.

"힘든 승부를 승리로 이끌어 대단히 기쁘다. 지금까지 많이 우승했지만 이번처럼 긴장했던 적은 없었다. "

- 우승의 최대 고비는.

"오늘의 5국이 어려웠다. 그러나 1대2로 뒤져 막판에 몰렸던 제4국이 정신적으로는 훨씬 부담스러웠다. "

- 오늘 중요한 승부에서 신수를 썼는데 평소 연구해둔 수였나.

"아니다. 馬9단이 들고 나온 형태가 나로서는 처음이어서 고심 끝에 모험을 걸었다. "

- 흑의 중국식 포석 때문에 백을 쥔 쪽이 고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5국 모두 흑이 이겼는데 이것은 흑이 유리하다는 증거인가.

"이번 결승전에서 백도 이길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중국식 포석 등 흑보다 백쪽이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5집반의 덤이라면 나는 흑이 좋다고 생각한다. "

- 李9단은 행동도 느릿하고 바둑도 느릿하게 참고 기다리는 기풍이다.

스피드를 중시하는 바둑에서 이런 스타일로 최고수가 된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바둑엔 양면이 있다. 빠르면 엷고 느리면 두텁다.

참고 기다리는 건 나 역시 괴롭지만 그래도 참는 편이 승부의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

- 李9단은 만7세 때 바둑을 배운 뒤 지금까지 16년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동안 바둑이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나도 처음엔 다른 아이들처럼 잘 어울려 노는 아이였다. 바둑을 배우면서 그속에 깊이 빠져드는 바람에 다른 것들과 점점 멀어졌을 뿐이다.

지금까지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다. "

- 패배해 눈물을 흘린 적은 있는가.

"많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울었다.

그리고 집에 가 진 바둑을 밤새워 공부했다. "

- 李9단은 만9세 때부터 7년간 스승 조훈현9단의 집에서 살면서 말썽은커녕 단 한번 발소리나 말소리를 크게 낸 일도 없다고 들었다.

그게 어린아이로서 가능한가.

"바둑을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밤에 기보나 책을 펴면 시간가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

- 李9단을 바둑천재라고 한다. 동시에 매일 오전 2, 3시까지 공부할 정도로 노력이나 인내력도 초인적이다. 李9단이 세계 정상에 오른 건 재능탓인가 노력탓인가.

"나는 IQ가 1백39밖에 안되니 천재라고 할 수 없다. 바둑은 나 스스로 재미있으니 노력이라고 볼 수 없다. " (웃음)

- 李9단은 오늘 우승으로 세계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했다. 그래도 적수를 지목한다면.

"이번 승부에서 보듯 세계정상권 기사들의 실력차는 종이 한장 차이다.

국내외에 적수는 많다. "

- 마지막으로 李9단의 바둑관 또는 인생관을 말해달라.

"묘수를 찾기보다 실수를 줄이는 것이 현실적인 승리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마라톤처럼 긴 승부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릴줄 모르면 이기기 어렵다. "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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