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소설 쓰는 것이 만만한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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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어떻게 해서 소설이 이렇게 만만한 것이 되었을까. 엇비슷한 구조에 자질구레한 얘깃거리를 역시 엇비슷한 입담으로 얽어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 소설이라고 믿게 되었을까. "

이번주 발간되는 봄호 문예지에 각각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이었던 제8회 작가세계 문학상 (고료 2천만원) 과 제4회 문학동네 소설상 (3천만원) 심사가 모두 '당선작 없음' 으로 끝났다.

상의 권위와 기대에 합당한 작품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응모자.심사위원의 수고 등을 고려해 가능한한 당선작을 내려는 것이 주최측의 마음이고 보면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다.

더군다나 올해 응모편수는 작가세계가 43편, 문학동네가 78편으로 두 곳 모두 전년보다 40%가량 늘어났다. 반면, 서두에 인용한 개탄스런 심사평처럼 심사위원들의 실망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작가세계 문학상 본심을 맡았던 오정희씨는 "데생공부를 충실히 하지 않고 막바로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덤비는 형국" 이라고 비유했다.

은희경.전경린 등의 수상자를 배출한 문학동네 소설상도 마찬가지. "그 많은 작품을 언제 다 읽나" 행복한 고민을 했다는 본심위원 김화영씨는 "다 읽고 난 뒤에 남은 것은…실망이다" 라고 심사평에 썼다.

양과 질이 비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예술의 속성.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것" 이나 "뒤틀린 신변잡기를 감각과 현상을 위주로 이해해 아무렇게나 늘어놓는 것" 이 소설은 아니라는 지적은 거품 빠진 문단에서 신인.기성 할것 없이 귀기울여야할 대목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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