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현실 따로…통계 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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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97년 한국의 만1세 이전 영아사망률은 1천명당 2.5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같은 해 한국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0.8%로 독일 (5%) 이나 미국 (3%) 보다 엄청나게 낮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적어도 이 분야에선 세계 유수의 선진국인가.

그러나 위의 수치는 '통계 후진국' 인 우리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허구의 숫자에 불과하다.

낮은 영아사망률은 신고율이 낮다는 사실만을, 대견스런 산업재해율은 산정기준이 까다롭다는 것만을 말해줄 뿐이다.

한국은 통계 찾기가 어려운 나라, 찾은 통계도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심지어 IMF는 한국 정부와의 협의문에 '정확한 경제통계의 작성과 공표' 라는 수치스러운 요구를 포함시킬 정도다.

현황에 어두우니 정책이 주먹구구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천4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실업자 직업훈련 사업은 통계자료 없이 입안.집행되는 정책의 비효율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노동부가 밝힌 훈련 수료자의 취업률은 98년 11월말 현재 19%.훈련을 안받은 사람들보다 낮은 수치다.노동연구원의 어수봉.신동균 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는 '매월 실업자 전체의 20%가 재취업한다' 는 것이다.

노동부 실업대책 모니터링 센터의 강순희 직업훈련팀장은 "산업별 성장전망과 기능별 인력의 수요.공급 현황을 파악할 대규모 조사가 시급하다" 면서 "이런 통계를 근거로 하지 않은 직업훈련은 성공할 수 없다" 고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훈련기관들도 실제 인력수요와는 관계없이 "개설하기 쉽고 비용이 싼 과정만 집중 취급한다" 는 게 노동부 직업훈련과 담당자의 말이다.

의료분야도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 국민이 가장 많이 앓는 질병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뚜렷이 알지 못한다.

보건복지부가 다음달 발표할 '21세기 보건.의료 종합발전계획' 은 암.고혈압.당뇨.결핵.간염을 국가관리 5대 질병으로 선정, 2003년까지 환자 비율을 낮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5대 질병의 선정기준이다.

송재성 보건정책국장은 "의료보험 통계와 사망원인 통계를 기초로 삼았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질병통계로서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의료보험조합연합회 통계분석팀 김윤옥 차장은 "의료보험 통계는 환자별이 아니라 진료행위별로 청구서가 나오는 데다 허위기재도 많아 질병통계로서는 무의미하다" 고 말한다.

사망원인의 경우 통계청의 담당자는 "사망신고시 의사 진단서 첨부율이 56%에 불과한 데다 진단서에도 사망원인이 '호흡정지' 라고 적혀있는 등 무성의한 기재가 많다" 고 밝혔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질병통계가 없다고 봐야 한다" 는 게 보건복지부 통계담당자의 말이다.

복지부의 다른 관계자는 "정책수립은 선진국이 우리와 소득수준이 같았을 때 어떤 정책을 썼나를 참고해서 한다" 고 말했다.

경제부문에서는 국민소득 통계의 신뢰도 문제가 제기된다.

국내총생산의 26%를 차지하는 제조업 통계의 경우 한국은행과 통계청간에 70% 이상이 차이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98년 3월 확정 발표한 96년도 제조업부문 부가가치는 1백조원인데 비해 그 다음달 통계청 산업통계과에서 발표한 수치는 1백74조원이다.

KDI 이재형 전임연구원은 "적어도 한쪽의 통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이라면서 "미.일 등 선진국의 경우 양자의 차이는 최대 5%" 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41개 정부기관에서 발표하는 공식통계는 2백79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통계적 기법에 의해 표본이 설계.조사되는 '조사통계' 는 기초적인 신뢰도를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행정기관이 집계하는 '보고통계' 는 대부분이 주먹구구다.

보고통계는 전체의 반이 넘는 1백43종에 이른다.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장을 지낸 김대영 해외건설협회장 (통계학 박사) 은 "모든 정책실패의 배경에는 통계의 부족과 부정확, 통계에 대한 몰이해가 숨어 있다" 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조현욱.김관종 기자

제보 02 - 751 - 5222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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