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덕 '사진에'展 금호미술관서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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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뭘 그렇게 물어봐요. 그냥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 되지…. " 사진작가 주명덕 (59) 씨는 제작과정을 꼬치꼬치 캐물으면 단지 이렇게 대꾸할 뿐이다.

그의 사진은 난해하다. 또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멀리서 보면 단지 '시꺼먼 종이'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금호미술관 (02 - 720 - 5114)에서 지난 3일부터 열리고 있는 '사진에' (An die Photographie) 전을 찾은 이들의 상당수가 액자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관람을 한다. 검은, 또는 회색으로 부옇게 된 화면에 마치 철사로 긁어놓은 듯한 흰 선이 얼른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추상화인가 싶어 자세히 보면 모두 풍경사진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66년 '홀트씨 고아원' 전을 시발로 한국전쟁과 혼혈아들, 오래된 초가 등 리얼리즘 사진에 전념해왔다.

88년엔 성철스님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풍경사진에 손을 댄 건 지난 81년. 겨울 설악산을 오르다 찍은 한장의 사진. 우연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오대산, 지리산, 제주도, 경주, 통도사 등을 누비며 산과 들, 나무와 풀꽃, 흙과 강물을 찍어왔다. 풍경사진으론 89년 서울미술관에서 '랜스케이프 (풍경)' 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를 가졌다. 이번에 선보인 1백여 점은 97, 98년 2년간에 걸친 작업의 결실이다.

사진이지만 회화를 연상케하는 그의 작품은 의외로 아무 조작을 가하지 않은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다만 현상할 때 빛과 인화지 등을 조절할 뿐. "대부분 해가 쨍쨍한 대낮에 찍은 것" 이라는 설명이 놀랍다.

논바닥에 스며든 물기, 오래된 나무등걸의 패임, 바람결에 따른 수풀의 움직임, 대파의 제멋대로 자라난 모습 등이 어두운 화면에 선 (線) 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독특한 미감 (美感) 이 느껴진다.

지저분한 장소도 흑과 백으로 단순화했을 때 아름다움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좋은 예로 살얼음이 군데군데 떠있는 강물에 나뭇잎이 떠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있다. 알고 보니 지난해 합천 해인사에 성철스님 부도를 보러갔다 인근 공사장에 파인 진흙탕을 잡은 것이다.

이렇듯 그의 풍경들은 이름이 없다. 어디를 찍었다는 특정 지명은 없어도 무방하다. 동양화에서는 자연을 그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실경 (實景) 과 진경 (眞景) 을 얘기한다.

신정아 큐레이터는 주씨의 작품이 "자연 그대로 그리는 실경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상적으로 재창조한 진경에 가깝다" 고 설명한다. 자연을 피사체로 잡고 있지만 단순히 풍경을 목격한다는 느낌보다 작가의 복합적 감정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인 듯 싶다.

오랜 세월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며 축적된 리얼리즘의 무게가 독특한 서정성 (抒情性) 을 띠게 하는 것이다.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는 난해함과 흑백사진이 주는 단조로움 탓에 분명 대중적이진 않지만, 사진 매체가 선사하는 매우 다른 맛의 세계는 경험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다음달 4일까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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