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37.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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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7장 노래와 덫

진부령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한철규는 승희와 함께 곧장 주문진으로 출발했다. 주문진 포구에 있는 횟집난전을 좀더 소상하게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난전좌판으로 쏟아져 나온 어종들은 지난 가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한겨울이면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한류를 따라 남쪽의 한바다로 월동을 하러 들어가야 할 어족들이 높은 수온탓으로 남쪽으로의 회유를 멈춘 까닭이었다.

그처럼 때아닌 난류세력이 확장된 탓으로 어종이 바뀌어 있어야 할 겨울 어장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겨울철의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잡히지 않아 간혹 보이는 명태값은 거의 금값이었다.

그 대신 4월과 6월 사이가 성어기인 넙치 (광어) , 정어리, 오징어, 삼치,참다랑어, 말조개 같은 난류성 어종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월동을 위해 남하중이던 고등어, 멸치, 삼치떼는 수온이 올라가자 제주도 근해에서 이동을 중지해 어장이 형성되고 있었고, 이들을 먹이로 하는 참다랑어떼도 성어기를 맞았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고급 어종인 삼치는 어획량이 과다해 고등어보다 오히려 값이 떨어지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덕대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난류성 어족인 영덕대게는 전통적으로 강구와 후포, 그리고 죽변 등지의 근해에서 많이 잡히던 어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문진을 비롯한 가근방 어항에서까지 만선으로 잡힐 때가 많아 한 마리에 오륙만원을 호가하던 영덕대게 값이 반이하로 폭락하고 말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난류성 어족인 광어값도 킬로그램당 십만원대를 호가했었는데, 지금은 사오만원대였다.

역시 난류성 어족인 대형 한치도 많이 잡혀 관광객들의 눈요깃감이 되어 주고 있었는데, 어린아이 몸집만한 한치 한 마리가 삼사만원에 팔려 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명태가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한철규에겐 충격이었다. 박봉환이가 그것을 먼저 눈치채고 주문진을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한씨네 행중이 그랬던 것처럼 박봉환도 3월 이후의 명태장사를 겨냥하고 있었으리란 예상은 어렵지 않았다.

간고등어의 매기는 경상도 산간지방이라 하더라도 한겨울이 지나면 쇠퇴기로 접어들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의 기후도 전례없이 온화해서 간고등어의 매기가 오래 지속될 가망도 없었다.

서너 시간 동안 어물난전을 돌아보던 한철규는 방파제로 나섰다. 방파제를 때렸다가 물러나는 파도의 육중한 행렬들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었다. 부서지고 있지만 그러나 결코 부서지지 않는 파도는 가슴 속으로 가라앉은 긴장감을 한껏 부풀려 일으켰다. 바람이 드셌지만 방파제를 따라 둘러 앉은 가족관광객들이 있었다.

난전에서 횟감을 사다가 가족들끼리 둘러 앉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광어회를 들고 있었다. 난전상인들이 광어로 속여 팔고 있는 도다리회였다. 갑자기 정민이가 보고 싶었다. 한때는 삐삐를 샀다고 흥분까지 했었던 그 아이가 언제부턴가 삐삐를 팽개쳐버렸고, 지금은 전혀 연락할 길조차 없어져버렸다.

집으로 전화를 걸 것이 거북한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서 그 물건을 산 것이 분명했을 텐데, 내던져 버리다니. 행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철규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삐삐를 내던져 버린 것은 서울로 그를 유인하려는 딸의 속셈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딸 아이가 그토록 잔꾀가 많거나 영악한 아이는 아니었다. 1년 동안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서울을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정민이만 만나고 내려오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현실적으로 절박한 심정이 들지 않았다. 다녀온 이후에 필경 겪게 될 마음 속으로부터의 혼란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혼란을 겪어선 안되었다. 지금은 그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부채까지 지고 있었다.

혼란이 한 번 스쳐가는 소나기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보다 심각한 결과가 올 것인지 그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은 딸 아이가 삐삐를 그랬던 것처럼 내던져 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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