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단적 사실주의 미학의 결정판이라 해도 좋겠다. 끝없이 눈발이 펼쳐진 러시아의 극동 스촨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수채화 같은 사랑 이야기다.
비록 사랑은 지역 특유의 안개풍 같은 수채화같지만, 그 속을 수놓는 인간군상들의 야생적인 삶은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지난해 국내에 첫 소개된 러시아 감독 비탈리 카네프스키의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의 후속작. 때문에 영화의 배경과 등장인물.이야기는 전작과 비슷하다. 감독의 분신 격인 주인공 발레르카는 훌쩍 컸다.
유년기 풋사랑이었던 갈리아의 참혹한 죽음을 위무하는 대타 (代打) 로 갈리아의 여동생 발카가 다가온다. 그리고 사랑과 이별…. 기다림에 지쳐 아무르강 북쪽의 조선소로 발레르카를 찾아온 발카는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만, 발레르카는 서로 제 갈 길을 가자고 냉정히 거절한다.
발카는 혼자 캄차카 반도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영화는 배경의 서정성과 사랑의 애틋함 뒤로 무지막지한 일상의 흔적을 풀어 놓는다. 불법낙태와 강간, 진창에 빠진 주정꾼, 벌거벗은 광인 (狂人) 등 발레르카의 음울한 성장기 기억들이 기록영화 스타일로 촘촘히 박힌다.
카네프스키의 말. "강간.도살.낙태 등 모든 것이 현실보다 훨씬 덜 폭력적이다". 그는 지난 90년 55세의 나이에 '얼지마…' 로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아 세계 무대에 데뷔한 '노장 신인' 이다. 6일 개봉.
정재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