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기수-납북자 맞바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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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가정보원이 80년대 이후 납북.월북한 사람 중 22명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인권단체나 유엔인권위원회가 북의 정치범수용소의 반인권적 실태에 대한 여러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수감중인 사람들의 인적사항과 참담한 수감생활까지 상세히 밝히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절감케 한다.

명단까지 확인한 이상 정부는 더 이상 주저할 것 없이 여러 경로를 통해 이들의 송환작업을 벌여야 한다.

이미 어제 본란에서 주장했듯, 남쪽의 미전향 장기수를 북으로 보내고 납북돼 정치범수용소에 수감중인 인사들 및 국군포로를 맞교환하는 협의를 벌이기를 남북 당국에 거듭 촉구한다.

인간은 어느 장소든 스스로 삶의 터전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자진 월북했다면 그 또한 그 사람의 선택일 수가 있다.

그러나 납북된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자유의지를 무시한 불법적 인신구속이다.

일종의 테러행위다.

수감자 중 상당수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87년 납북된 동진호 선원이나 69년 공중납치된 대한항공 여승무원들, 그리고 미국 유학도중 오스트리아에서 납북된 이재환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선 1차적으로 이들의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

10년이 넘도록 이들의 소재 파악도 못하고 철저한 송환요구도 못한 것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한 직무유기다.

3.1절 기념 특사로 석방을 결정한 미전향 장기수는 납북 인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 상당수가 남파 간첩이거나 전범 (戰犯)에 가까운 형사범에 속한다.

그래도 우리는 이들이 준법서약이라는 약식절차만 밟아도 석방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마저 거부하기 때문에 북에 가족이 있는 고령의 장기수를 조건없이 석방하겠다는 인도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남북은 화해와 협력의 관계를 열어야 하는 새로운 전환점에 와 있다.

말의 잔치로만 벌이는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인적.물적 교류를 통한 현실적 의미의 화해 협력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출발을 남쪽 장기수를 북으로 보내고 북에 수감중인 국군포로나 납북자들을 남으로 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진정한 의미의 화해 물꼬가 열릴 것이다.

북한도 최근 평양방송을 통해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북남간에 가장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초미의 인권문제' 임을 역설해 왔다.

화해와 협력이 어느 정도의 상호주의에 입각해야 하듯 인권문제 해법도 쌍방 교류적이어야 한다.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초미의 인권문제라면서 납북인사는 단 한명도 없다는 식의 종래 북의 주장은 이제 명단까지 밝혀진 이상 되풀이될 수가 없다.

남과 북이 함께 만나 좀더 솔직하게 납북자와 미전향 장기수 교환문제를 심도있게 검토해야 민족의 비원 (悲願) 인 이산가족문제를 푸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남북 화해와 협력의 본격적 출발이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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