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은 죽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액정화면(LCD)나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밀려 얼핏 ‘사양산업’으로 여겨져온 브라운관 업계가 부활하고 있다. LCD 등이 비싼 가격 때문에 수요 증가세가 주춤한 반면 브라운관 공장은 가동률이 100%에 육박하는 호황을 누리는 것이다.

삼성SDI와 LG필립스디스플레이 등 국내 브라운관 업계는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예상하고 있다.

◇자꾸 올려잡는 매출=지난해 브라운관 부문에서 4조140억원의 매출을 올린 삼성SDI는 올해 LCD 등에 밀려 브라운관 매출이 10% 정도 줄 것으로 예측했다가 최근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높게 고쳐 잡았다. 상반기 이 회사 브라운관 매출은 2조1650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관계자는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수요가 많아 올해는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다투는 LG필립스디스플레이도 당초 10% 이상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봤으나 최근에는 지난해 수준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브라운관 공장의 가동률도 지난해 80%대에서 올해는 100%에 가깝다. 삼성SDI와 LG필립스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은 "생산라인을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리고 있다"며 "수요를 대느라 올해는 휴가 일수도 줄였다"고 말했다. 브라운관 수요가 확 떨어져 휴가 일수를 늘렸던 지난해와 대조적이다.

◇가격 경쟁력 갖춘 데다 경쟁도 줄어=브라운관 호황은 첫째,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브라운관 TV는 같은 크기의 LCD TV보다 값이 3분의 1수준이다. 비록 부피가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LCD에 비해 화질이 좋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전 세계 TV 시장의 95%를 브라운관 TV가 차지하고 있다.

브라운관 시장을 잠식하리라던 LCD는 올 상반기부터 공급 과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곤 가격에 부담을 느끼면서 수요가 멈칫거리기 때문이다. 6월부터는 주요 LCD 업체들의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1990년대 중반까지 브라운관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업체들이 브라운관 사업을 접거나 줄인 것도 국내업체에는 호재다. NEC.마쓰시타.소니 등이 속속 브라운관 사업을 버리고 PDP나 LCD로 뛰어드는 바람에 경쟁이 줄어든 것이다.

◇전망=업계는 브라운관 호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동남아나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시장에서 수요가 늘고 있어 2006년이나 2007년까지 호황이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 말이나 2006년 초 LCD 및 PDP업계가 증설을 완료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지면, 브라운관은 또 한번 역풍을 맞을 것이란 예측도 만만찮다.

이현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