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수면제 먹고 '구사일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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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죽기도 정말 힘드네요. 두번 살게 해준 사기범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20대의 사기꾼에게 속아 칼슘보충제를 수면제로 알고 대량으로 복용했다가 목숨을 건진 피해자들이 검찰에서 한 말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이모(26.여)씨는 지난 4월 한 인터넷 카페에서 "속칭 '물뽕(액체 히로뽕.GHB)'과 수면제를 판다"는 광고를 보고는 수면제 100알을 주문했다. 고교 졸업 후 취업을 못하는 처지를 비관해 오다 자살하기 위해서였다. 물건 값을 송금한 뒤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었다. 하지만 극심한 설사로 며칠간 병원 신세를 진 뒤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서울에 사는 강모(31)씨와 광주의 문모(36)씨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인터넷 카페를 통해 대량 구입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씨 등은 지난달 사기 피해자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먹었던 약은 수면제가 아니라 칼슘보충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정이 있는 증권사 직원 이모(31)씨는 유흥업소 여종업원에게 '엉큼한 작업'을 하려고 최음제인 '물뽕' 20회분을 50만원에 샀다가 망신만 당했다. 검찰 조사는 물론 벌금 200만원까지 물게 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물뽕'은 알코올과 함께 복용시 환각작용이 있어 성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며 "이번에 물뽕을 사려다 적발된 19명 대부분도 성관계를 거절하는 여성을 유혹하려고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12일 인터넷 카페를 통해 광고를 낸 뒤 수면제 대신 칼슘보충제를, 물뽕 대신 콘택트렌즈 세척제를 보내 50여명에게서 15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김모(25)씨를 구속 기소했다. 김씨에게서 물뽕을 사려다 사기당한 19명도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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